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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청 시가지 서부에 위치한 흥성고성은 명나라 말기 원숭환의 거점이자 영원성 전투가 벌어진 그 영원성으로, 주요 관광지이다. 정방형으로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주변 길이는 3.2km이다. 서안고성, 형주고성, 산서 평요고성과 함께 중국에서 지금까지 완정하게 보존된 4대 고성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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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연유산 :
싱청 시가지 서부에 위치한 흥성고성은 명나라 말기 원숭환의 거점이자 영원성 전투가 벌어진 그 영원성으로, 주요 관광지이다. 정방형으로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주변 길이는 3.2km이다. 서안고성, 형주고성, 산서 평요고성과 함께 중국에서 지금까지 완정하게 보존된 4대 고성으로 평가받는다.
기원 990년부터 흥성으로 불렸고 명나라 선덕 3년인 기원 1428년에는 이곳을 영원위성(寧遠衛城)으로 개칭했으며 청나라 때에 와서는 영원주성(寧遠州省)으로, 1914년에는 현재의 흥성(兴城)으로 다시 이름을 고쳤다.
옛성은 정방형모양으로 되였는데 그 둘레의 길이가 3200메터, 성벽의 높이가 8.8메터이며 동서남북으로 성문이 있다. 성의 중앙에는 종고루(鐘鼓樓)가 있는데 이곳의 종과 북은 평시에는 시간을 알렸고 전시에는 진군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되였다.
고성내에는 국가중점보호문화재로 등재된 흥성문묘가 있다. 이는 동북3성에서 현존한 제일 오랜 문묘(文廟)이며 그 면적이 16,800평방메터이다.
고성내에는 조씨(祖氏)패방과 성황묘(城隍廟), 장군부(將軍府), 주씨저택(周家住宅) 등 볼거리들이 다양한데 이 모두가 500여년 역사의 무상함과 현지의 풍토세대, 찬란한 문화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 ‘ 일신수필’ 7월 19일에, 연암은 “영원성 안 한길 가에 조가의 패루가 마주 섰는데, 그 사이가 수백 보나 되며, 두 패루가 모두 삼문(三門)으로 되었고 기둥마다 앞에 몇 길 되는 돌사자를 앉혔다. 하나는 조대락(조대수의 형)의 패루요, 또 하나는 조대수의 패루이다. 높이 모두 예닐곱 길이나 되는데, 대수의 패루가 조금 낮은 편이다”라고 했다. 당시 영원성을 근거지로 조씨 집안은 요동 지역에서 위세를 떨쳤다. 특히 조대수의 아버지 조승훈은 당시 요동부총병으로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이끌고 제일 먼저 조선에 들어왔다. 조대락과 조대수는 명나라 말기 영원성을 지키면서 무공을 세웠기에 그들의 공적을 기리는 패루를 세웠다. 그러나 조대락은 송산·행산 전투에서 포로가 됐고, 조대수는 1631년 금주성을 지키다가 군량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청나라에 항복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청 태종인 홍타이지는 조대수를 풀어줬다. 조대수는 다시 군사를 정비해 청나라에 항전하다가 1642년 다시 항복한 후 청나라에 적극 협력했다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있다. 당시 명나라 조정에서 조대수 패루에 ‘확청지열(廓淸之烈, 영토를 넓히고 깨끗하게 한 열렬)’, 조대락의 패루에는 ‘등단준열(登壇駿烈, 준엄하고 열렬한 공)’의 이름을 하사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명나라는 청나라에 항복한 장수에게 이런 이름을 내렸고, 이런 사실을 알고도 청나라는 승인한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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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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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원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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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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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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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中, 정조 때 있었던 '원훈초석' 그대로... 조대수 패방과 이흘(李忔)
흥성고성을 방문하고 조씨 형제 패방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선양대학교 바이센 교수는 2023년 9월에 발표한 논문 〈랴오닝성 조대수 석패방의 석각 인물 그림 고찰〉에서 “조대수는 조선 사신과 왕래가 잦았고, 패방에 등장하는 인물 12명 중 최소 3점은 조선 사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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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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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시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흥성고성이 있다. 이 성은 조선 사신이 남긴 자료가 많다.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길이가 3.2km이다. 연암 일행은 고성 밖에서 자고 7월 19일 을미일에 성안에 들어와 조씨 패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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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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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흥성고성 조씨 석패방
흥성고성 북쪽의 위원문과 서쪽의 영녕문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성황묘를 방문하려다 거리가 멀어 포기하고 남쪽 길 보행거리를 걸었다. 남쪽 길은 동쪽 춘화문 거리 점포와는 다르게 상점이 문을 열고 관광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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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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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대수 무덤과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명나라의 오랜 관습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그대로 승계받는 것이다. 조대수(祖大壽)는 아버지의 군대를 물려받아 군문에서 근무하며 친족이 아닌 측근 장군들로 구성된 조가장(祖家將)이라는 군사 조직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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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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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中 4대 고성인 랴오닝성 흥성고성 방문기
관광버스는 랴오닝성(遼寧省) 흥성고성(興城古城, 兴城古城, 영원위)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고성을 방문한 것은 연암 박지원 일행이 건륭 45년(1780) 7월 19일 여름에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고성 밖에서 하루를 묵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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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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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시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흥성고성이 있다. 이 성은 조선 사신이 남긴 자료가 많다. 성벽의 높이는 8.8m이고, 길이가 3.2km이다. 연암 일행은 고성 밖에서 자고 7월 19일 을미일에 성안에 들어와 조씨 패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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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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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中, 정조 때 있었던 '원훈초석' 그대로... 조대수 패방과 이흘(李忔)
흥성고성을 방문하고 조씨 형제 패방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선양대학교 바이센 교수는 2023년 9월에 발표한 논문 〈랴오닝성 조대수 석패방의 석각 인물 그림 고찰〉에서 “조대수는 조선 사신과 왕래가 잦았고, 패방에 등장하는 인물 12명 중 최소 3점은 조선 사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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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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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대수 무덤과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명나라의 오랜 관습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그대로 승계받는 것이다. 조대수(祖大壽)는 아버지의 군대를 물려받아 군문에서 근무하며 친족이 아닌 측근 장군들로 구성된 조가장(祖家將)이라는 군사 조직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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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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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흥성고성 조씨 석패방
흥성고성 북쪽의 위원문과 서쪽의 영녕문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성황묘를 방문하려다 거리가 멀어 포기하고 남쪽 길 보행거리를 걸었다. 남쪽 길은 동쪽 춘화문 거리 점포와는 다르게 상점이 문을 열고 관광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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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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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中 4대 고성인 랴오닝성 흥성고성 방문기
관광버스는 랴오닝성(遼寧省) 흥성고성(興城古城, 兴城古城, 영원위)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고성을 방문한 것은 연암 박지원 일행이 건륭 45년(1780) 7월 19일 여름에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고성 밖에서 하루를 묵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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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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