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북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조선 시대의 궁궐. 1392년에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1394년 10월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1395년 9월에 완성한 궁궐이다.
경복궁이란 궁궐 이름은 태조의 명에 따라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시경》에 있는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딴 이름이다.
경복궁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네모난 울에 둘려 있는데, 정남에
광화문, 정북에
신무문, 동에
건춘문, 서에
영추문을 세웠다. 정전인
근정전(국보 제223호)을 중심으로 둘레에는 남문인 근정문을 비롯한 네 문이 있었다. 그 북쪽의
사정전은 편전(임금이 늘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던 궁전)이며,
강녕전,
교태전 등의 침전과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1412년(태종 12년)에 연회 장소인
경회루(국보 제224호)를 지었고, 세종 때에
보루각,
간의대 등 관측 시설까지 갖추었다. 세종대에 여러 건물이 보수 개축되었고, 또 일부가 불타 다시 짓기도 하였다.
그 뒤 1592년(선조 25년)의 임진왜란에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임금이 피란길에 오르자, 뒤미처 난민들이 궁에 불을 질러 건물이 다 타 버렸다. 1606년(선조 39년)에 경복궁을 복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270년 동안이나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 뒤
흥선 대원군이 정권을 잡자,
1865년(고종 2년)에 경복궁을 다시 세울 것을 건의하게 되었다. 이후 7년 이상의 공사 끝에 경복궁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공사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당백전을 발행하다 보니 국가 경제 에 크나큰 부작용을 빚기도 하였다.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빼앗은 뒤인 1917년에 창덕궁 대조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이 불타 버렸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다시 짓는다는 명목으로 경복궁 안의 여러 전각을 헐어 이용하였다. 그 뒤에도 광화문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헐거나 옮겨 놓았고, 경복궁 바로 앞에다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1927년에 일본인이 광화문을 건춘문 옆에다 옮겨 놓았는데, 그나마 6·25 전쟁 때 문루가 불타 버렸다.
이후 오래도록 석재만 남아 있던 것을 1968년에 궁 남쪽 정문 자리에다 다시 지었다.
경복궁은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