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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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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그 부자는 방을 써 붙이고는 양자될 아이를 구하고 있었다. 많은 소년들이 그 방을 보고 부자를 찾아와 양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부자는 찾아온 소년들이 자기의 물건을 탐내는 욕심쟁이인가 아닌가를 먼저 시험해 보았다. 즉, 소년들이 찾아오면, 부자는 그들을 자기 방에다 들여 놓고 얼마 동안 혼자 있게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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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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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누구에게나 쥐통이라는 통증이 올 수 있는데 이 동네에 들어서면 쥐통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그 이유인즉 이러하다. 이 동네의 형세를 일러 사제형국이라 하는데 촛대봉 쪽은 뱀의 형국이요, 그 건너는 부엉이가 내려다보는 형국이요, 괭이산 쪽은 괭이 같은 형국이다. 그 안에서 서로 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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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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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천에 효자로 유명한 오백주 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은 평소 지극한 효성으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었다. 하루는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집으로 오는데, 거의 저녁 무렵에서야 축석고개에 닿았다. 날은 어두워졌으나 더는 머무를 수가 없어서 고개길을 넘어오는데,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란 선생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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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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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화현에 ‘솔치고개’가 있는데, 지도에는 ‘송재’라고 나와 있다. 옛날 거기에 솔치주막이 있었다. 장에 갔다 오거나 술을 마시거나, ‘솔치고개’를 넘을 사람들은 이 주막에서 묵었다. 다리가 아프거나 해가 지면 거기서 쉬면서 놀음들을 했다. 그게 포천에서 화현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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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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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 서울에 소장터가 있었다. 소며, 돼지며, 개를 잡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저녁이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몇 사람들이 모여 술을 먹다가 그 귀신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그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안된다.” 고 하자, 다른 사람이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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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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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 동네에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은 사랑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하고는 답례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여자가 시집을 간 후, 이 남자는 여자를 너무 사모해서 병이 들었다. 병이 더욱 깊어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다 죽게 되었다. 남자의 부모가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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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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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궁예 왕이 왕건한테 쫓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궁예 왕의 첫 도읍지가 철원이었는데 왕건에게 쫓겨나서 관인면 ‘고남산’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 왕건이 그 곳에까지 쳐들어오자 울음산으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그 산에서 국수를 먹고 갔는데, 그 때문에 그 산봉우리에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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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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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부락이 형성되기 전에는 각종 야생동물들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유명한 포수들이 사냥을 왔다. 사냥꾼들이 올 때는 혼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몰이꾼들로 소몰이 하는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왔다. 사냥꾼들은 길목을 잡고 있다가 소몰이꾼들이 짐승을 몰아오면 총을 쏘아 잡았다. 특히 이곳에는 노루가 많아서 노루 사냥을 많이 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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