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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종섭(계명대학교 거창학습관 책임교수)
◈ 가조면 당동 당산제 민속자료 제 21호인 당집이 있는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이다. 당집은 마을 서쪽 100m 지점에 위치하며 매년 정월에 당산제를 올렸다. 당집은 흙과 돌로 지은 집으로 1859년(순조)에 오조영(吳祖英)이 초가지붕을 고쳐 기와를 얹었다는 중수기가 남아 있다. 매년 정월 길일을 택하여 동제를 올리고 다음날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모여 음복하고 지신밟기를 한다.
◈ 거창 삼베일소리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삼베의 고장인 거창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로서 길쌈하는 과정인 밭매기, 삼잎치기, 삼곶, 삼삼기, 물레, 베나르기, 베매기, 베짜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리와 기능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 기능 보유자 이말주(여, 68) , 기능후보자 박종섭(남, 60), 김복심(여, 66), 기능조교 이수연(여, 67) 씨 등이 있다.
◈ 징장(匠) 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이며, 기능보유자 이용구(남, 65)씨가 16세때부터 기능을 전수받아 전국 최고의 수준을 이루고 있다. 징을 만드는 과정인 쇠녹이기, 바디기 만들기, 뉘핌질, 돋음질, 냄질, 싸개질, 부질, 담금질, 터집잡기, 풋울음, 가질, 울음잡기 등이 잘 보존되어 전수하고 있다.
◈ 황산신씨마을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조선조 때 이루어진 전통한옥과 토담, 정원, 연못 등이 고스란히 남아 옛 정취와 전통마을의 가풍을 보여준다.
◈ 명의 유이태(劉以泰) 조선 숙종 때 명의(名醫) 유이태의 어린 시절에 관한 설화로, 수승대 어귀인 어나리 서당에서 글 공부할 때 예쁜 아가씨의 유혹에 빠져들었다가 그 아가씨가 가지고 놀던 구슬을 얻어 전국에 의술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선생은 위천면 서마리 출신으로 지금 위천중학교 뒷편에 그가 침대롱을 놓았다고 하는 침대롱바위가 남아 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許浚)이 사사한 유의태(柳義泰)는 선조 초기의 산청사람이라고 하며 거창의 유이태와는 다른 인물이다.
◈ 음석(陰石) 거창읍 양평리 마을 앞에 있었던 거대한 바위에 얽힌 설화이다. 스님을 학대하던 당시의 권문세가였던 양평 신(愼)씨들에게 마을 앞의 음석을 제거하면 더 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도승이 일러주자 이를 믿고 바위를 깨뜨렸는데, 이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양평 신씨들은 몰락했다. 현재 음석이 있는 자리에는 1979년 신종옥(愼宗玉, 작고)씨가 옛 음석을 재현해 놓았다.
◈ 거창가(居昌歌, 일명 娥林別曲) 19세기 중기 거창부 관원들의 학정과 민폐를 고발하는 300여 절의 한글가사. 전국에 전파되어 진주민란, 거창의 임술민란(1862), 동학혁명 때 널리 퍼져 민중 봉기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한다.
◈ 가조면 사병리 당동, 고제면 봉산리 용초, 신원면 대현리 내탐, 거창읍 장팔리 등에서는 지금도 음력 정월에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토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속에서 음력 정월에 안택굿, 신수점, 부적 등을 받아 지닌다. 거창의 유림들은 서부지역에서는 안의향교, 북부와 동부는 거창향교, 남부인 신원면은 삼가향교를 찾는다. 불교의 교세가 아직도 우세한 가운데 개신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향교 1개소, 사찰 28개소, 교회 71개소, 성당 5개소가 있으며, 신흥종교인 원불교, 성덕도, 여호와의 증인, 금강대도, 증산도 등이 각각 지회를 두고 있다.
<거창군 종교단체 현황> • 불교 - 28 개소 (9,615 명) • 기독교 - 71 개소 (7,417 명) • 천주교 - 5 개소 (2,285 명) • 유교 - 1 개소 (1,500 명) • 기타 - 5 개소 (1,912 명) • 총계 - 110개소 개소 (22,729명 명)
※ 거창군 통계자료 인용
◈ 거창 삼베 거창은 예로부터 기후나 토질이 삼 재배에 적합하여 양질의 삼베를 생산해 왔다. 현재 북상면, 남상면, 가북면, 거창읍 가지리 등에서 삼을 재배하여 재래의 베틀로 베를 짜고 있는데, 그 품질이 다른 지방의 삼베보다 우수하다.
◈ 거창 사과 거창사과는 빛깔과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당도가 매우 높아 국내는 물론, 일본에도 대량 수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