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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보
◈ 공주시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웅진백제의 추정왕궁지 공산성 /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격전지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종서(金宗瑞, 1390∼1453) / 정분(?∼1454) / ◈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 / 노응환(盧應喚), 노응탁(盧應), 노응호(盧應晧) / 유형(柳珩, 1566∼1615) /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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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웅진백제의 추정왕궁지 공산성
웅진백제시대의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는 공산성(公山城, 사적 제12호)은 웅진성(熊津城), 쌍수산성(雙樹山城), 공산산성(公山山城), 공주산성(公州山城)의 명칭을 지니고 있는 바, 이는 공산성이 시대의 추이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여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산성의 내역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백제 본기 성왕 4년(526)조에 공산성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처음인데 공산성은 왕궁지로서, 치소(治所) 또는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할 당시 의자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최후까지 항거하다 항복하였으며, 신라 헌덕왕 14년에 일어난 김헌창의 난 발생시 또한 최후의 격전지였다는 기록이 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이후 조선시대에는 성내에 감영(監營)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타나고 있으며 인조대왕(仁祖大王)이 이괄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파천하였다가 공산성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근심 속에 있을 때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기쁜 나머지 기대었던 두그루 나무에 정3품 대부장의 벼슬을 내렸으나 그후 나무는 죽고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므로 그 유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관찰사 이수항이 영조 10년에 쌍수정(雙樹亭)을 건립하여 지금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격전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은 조선을 비롯한 청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사를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농민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대 전투는 1894년 음력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와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공주에서 벌어진 두 차례 전투였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농민군의 공주전투는 열강의 침략에 저항한 조선민중 저항사의 정점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이 전투에 참여한 농민군은 대략 2만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봉준이 이끄는 부대가 최후를 맞이한 곳은 공주시내에서 부여방면으로 향하는 우금치(牛禁峙)인데 1973년 위령탑을 세웠으며 우금치 전적지는 사적 제387호로 지정되어 있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종서(金宗瑞, 1390∼1453)
조선시대 문신,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본관은 순천으로 1405년 문과에 급제했다. 1433년 함길도 관찰사가 되어 야인들의 변경침입을 격퇴했고 6진(鎭)을 설치해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정했으며, 함길도 병마도절제사, 형조·예조판서, 우참찬,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세종실록』의 총재관(摠裁官)을 거쳐『고려사절요』의 편찬을 감수하였으며 12세의 단종이 즉위하자 좌의정으로 어린 왕을 보필했다.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에 의해 계유정난의 1차 희생자로 두 아들과 함께 격살되고 대역모반죄로 효시 되었다가 영조 22년(1746)에 복권된 김종서장군은 문무를 경비한 충신으로 대호(大虎)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 정분(?∼1454)
조선시대 문신, 자는 자외(子畏), 호는 애일당(愛日堂). 본관은 진주(晋州), 태종 16년(1416) 찬시문과에 급제해 이조좌랑, 병조 정랑을 거쳐 1430년 집의(執義)로서 성개의 노비사건을 계문하지 않은 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우무대언, 우승지, 충청·평안관찰사를 역임했다. 공조참판으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예조참판, 호조판서를 지냈다.
 
문종이 죽을 때 김종서, 황보인과 더불어 어린 세자의 보호를 부탁받고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1453년 단종 1년 전라, 충청, 경상도 도체찰사가 되어 충주로 향하던 중 계유정난으로 낙안에 안치되어 관노(官奴)가 되었다가 사사당했다.
 
◈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
조선시대 승병장(僧兵將), 호는 기허(騎虛), 성은 박(朴), 본관은 밀양(密陽). 휴정대사의 고제(高弟)로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 선장(禪杖)으로 무예를 익혀 그 재능을 따를 자가 없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백명의 숭병을 규합해 의병장 조헌과 함께 이해 8월 청주를 수복하고 이어 금산에 이르러 고마애까와(小早川隆景)의 일본군 부대와 격전하다가 조헌 등 7백 의사(義士)와 함께 전사했다.
 
◈ 노응환(盧應喚), 노응탁(盧應), 노응호(盧應晧)
노응환, 노응탁, 노응호 3형제의 본관은 만경으로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의 의병에 자원하여 승병장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 수복에 참전해 왜적을 격파하고, 금산성 전투에서 용전하다가 1592년 8월 700명의 의사(義士)와 함께 삼형제가 장렬히 전사했다. 이중 막내인 노응호는 19세의 젊은 나이로 참전하였다 전사하였으며 삼형제가 한집안에서 의병으로 출전한 예는 극히 드문 예로 뜻있는 고향사람들에 의해 고향에 사당이 건립되었다.
 
◈ 유형(柳珩, 1566∼1615)
조선시대 무신,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본관은 진주(晋州).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해온 그는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의 휘하에 들어가 강화에서 활약했고 의주의 행재소에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94년 무과에 급제해 남해현감을 지냈고, 1597년 정유재란 때 통제사 이순신의 막료로서 노량해전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을 입었으나 끝까지 전투한 사실이 알려져 부산진첨절제사로 특진되었다. 1600년 경상우도 수군절제사에 승진해 이듬해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으며 충청도, 함경북도, 경상도, 평안도, 황해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 김옥균(金玉均, 1851∼1894)
조선시대 정치가,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鈞), 본관은 안동(安東). 고종 9년(1872) 알성문과에 장원, 전적(典籍)을 거쳐 교리(校理)와 정언(正言)을 역임했다. 당시 사대주의적 수구파가 청나라의 후원을 믿고 위세를 떨쳐 국사가 나날이 그릇되어감을 보고 오경석에게 신학문을 배웠다. 1881년 일본의 선진문물을 돌아보고 귀국해 이듬해 수신사 박영효 일행의 고문으로 다시 도일하여 일본에서 17만원의 차관을 얻고 돌아왔다. 이후 이조참의,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서재필 등 청년을 일본에 유학시키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과 함께 박규수의 집에 모여 교유하며 국가의 개화를 위한 방안을 토의하였다.
 
당시 청나라를 배경으로한 민씨 일파의 세도정치에 불만을 품고 국제정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수구파를 제거하고 국가를 개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어 개화당(開化黨) 정치인을 규합하여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해 10년간 본국정부의 자객을 피해 일본 각지를 방랑한 후 1894년 상해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본국 정부의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당했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 계유명삼존천불비상 - 제108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관식(왕) - 제154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관식(왕비) - 제155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엽형이식(왕) - 제156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수식부이식(왕비) - 제157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경식(왕비) - 제158호, 국립공주박물관
• 금제뒤꽂이(왕) - 제159호, 국립공주박물관
• 은제팔찌(왕비) - 제160호, 국립공주박물관
• 청동신수경 - 제161호, 국립공주박물관
• 석수 - 제162호, 국립공주박물관
• 지석 - 제163호, 국립공주박물관
• 두침 - 제164호, 국립공주박물관
• 족좌 - 제165호,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의당금동보살입상 - 제247호, 국립공주박물관
• 갑사 삼신불괘불탱 - 제298호, 갑사
•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 - 제299호, 신원사
 
■ 보물
• 공주 중동 석조 - 제148호,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 반죽동 석조 - 제149호,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 - 제150호, 반죽동
• 갑사 철당간 및 지주 - 제256호, 계룡면
• 갑사부도 - 제257호, 계룡면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권제1) - 제269호, 사곡면
• 감지금니 묘법연화경(권제 6) - 제270호, 사곡면
• 갑사의 동종 - 제478호, 계룡면
• 선조2년간 월인석보판목 - 제582호, 계룡면
• 마곡사 5층석탑 - 제799호, 사곡면
• 마곡사 영산전 - 제800호, 사곡면
• 마곡사 대웅보전 - 제801호, 사곡면
• 마곡사 대광보전 - 제802호, 사곡면
• 공주 서혈사 석불좌상 - 제979호, 국립공주박물관
• 마곡사 석가모니괘불탱 - 제1260호, 사곡면
• 청량사지 5층석탑 - 제1284호, 반포면
• 청량사지 7층석탑 - 제1285호, 반포면
• 계룡산 중악단 - 제1293호, 반포면
 
■ 사적
• 공주 공산성 - 제12호, 산성동
• 공주 송산리 고분군 - 제13호, 금성동
• 공주 학봉리 도요지 - 제333호, 반포면
•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 - 제334호, 장기면
• 우금치전적지 - 제387호, 금학동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유형장군 유물 - 제18호, 장기면
•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 제20호, 사곡면
• 신원사 5층석탑 - 제31호, 계룡면
• 쌍수정 사적비 - 제35호, 금성동
• 명국 삼장비 - 제36호, 금성동
• 공북루 - 제37호, 금성동
• 공주 동원리석탑 - 제49호, 신풍면
•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 제50호, 계룡면
• 갑사 석조보살입상 - 제51호, 계룡면
• 갑사 사적비 - 제52호, 계룡면
• 공주 오룡리귀부 - 제61호, 이인면
• 마곡사 동종 - 제62호, 사곡면
• 공주 향교 - 제75호, 교동
• 신원사 대웅전 - 제80호, 계룡면
• 덕천군 묘출토분청이부호 - 제81호, 국립공주박물관
• 연평부원군 신도비 - 제89호, 이인면
• 선화당 - 제92호, 웅진동
• 포정사 및 삼문 - 제93호, 웅진동
• 공주 상신리 당간지주 - 제94호, 반포면
• 갑사 강당 - 제95호, 계룡면
• 공주 가척리석탑 - 제98호, 탄천면
• 공주 소학동 효자향덕비 - 제99호, 소학동
• 초려 이유태유고 - 제104호, 상왕동
• 갑사 대웅전 - 제105호, 계룡면
• 갑사 대적전 - 제106호, 계룡면
• 포저 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 제126호 사곡면
•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 제135호, 사곡면
• 남평조씨 병자일기 - 제153호, 반포면
 
■ 무형문화재
• 계룡백일주 - 제7호, 봉정동
• 공주 탄천장승제 - 제8호, 탄천면
• 공주 봉현리상여소리 - 제23호, 우성면
 
※ 이밖에도 도지정 기념물(송선군묘 등 18건), 도지정 민속자료(초려 이유태가의 유물 등 2건), 문화재 자료(공산성 진남루 등 28건), 시지정 유형문화재(동헌 1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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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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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