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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중앙에 위치한 공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전체면적의 70.4%가 임야이다.
북쪽으로는 차령산맥과 남쪽으로는 노령산맥이 이어져 있으며 동남쪽의 계룡산을 진산으로 하여 금강이 중앙을 관류하며 그 지류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연계되어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5대왕(문주, 삼근, 동성, 무령, 성왕) 64년간(475∼538)의 왕도였으며 국립공원 계룡산을 비롯하여 4대 사찰(마곡사, 갑사, 동학사, 신원사)이 있어 산자수명한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무령왕릉 등 백제의 유적과 천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 웅천주의 수두(도독부)였고, 고려 태조 23년(940) 웅주(熊州)를 공주(公州)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성종 2년(983) 공주에 목(牧)을 설치할 정도로 충청지역에서 문화, 행정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선조 31년(1598) 충청도 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옮겼으며 이후 334년간 충청도의 수부로 기능 하였다. 1910년∼1932년까지 23년간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였으며 삼남지방에서 한양을 향하는 관문역할을 하였던 공주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서울-호남지방과 대전-서해안 방면을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육로가 방사형으로 뻗쳐 있어 교육, 문화, 관광, 교통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주는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의 인심은 순후하면서도 천년관아의 고장답게 자긍심이 강하다.
고대 475 (백제 문주왕 1년) 백제의 웅진 천도
538 (백제 성왕 16년) 사비 천도
660 (백제 의자왕20년) 웅진으로 피란
686 (신라 신문왕 6년) 웅천주로 개칭
757 (신라 경덕왕 16년) 웅주로 개칭
822 (신라 헌덕왕 14년) 김헌창의 반란
고려 940 (태조 23년) 공주로 개칭
983 (성종 2년) 12목 설치
1018 (현종 9년) 군으로 강등
1172 (명종 2년) 공주 명학소의 반란
1341 (충혜왕 2년) 목으로 승격
1376 (우왕 2년) 왜구의 침입
조선 1455 (세조 때) 공주진관 설치, 2군 10현을 통괄하게 함
1598 (선조 31년) 충청감영을 공주로 옮김
근대 1894 - 동학군이 우금치 전투
1895 - 공주목을 군으로 개편, 공주부를 신설
1896 - 충청도가 충청남도·충청북도로 분리됨
1914 - 산내·천내·구죽면을 회덕군으로 이관
1932 - 충청남도 도청 대전으로 이전
1938 - 공주면이 읍으로 승격, 1읍 11면이 됨
현대 1986 - 공주읍이 공주시로 승격되면서 공주군과 공주시가 분리되었음
1995 -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 1읍 10면 8개동으로 됨
1998 - 공주시 과·소동 통폐합에 따라 1읍 10면 6동 227개리 107개통 1,901개반으로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