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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궁인창의 논문모음
◈ 글로벌 협력의 상징, 장보고해
2025년은 청해진 국가유산 지정 40주년 되는 해로 완도군은 6월 26일부터 3일간 완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 중국, 일본의 승려들은 글로벌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정부는 완도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해 1994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했다. 3년 후인 2028년은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건설한 지 1,200주년이 되는 해다.
글로벌 협력의 상징, 장보고해
- 궁인창 ∥ 생활문화아카데미
- 2025. 7. 8.
 
 
1. 머리말
 
2025년은 청해진 국가유산 지정 40주년 되는 해로 완도군은 6월 26일부터 3일간 완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 중국, 일본의 승려들은 글로벌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정부는 완도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해 1994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했다. 3년 후인 2028년은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건설한 지 1,20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지도의 도시와 해양 지명에는 탐험가, 발견자, 역사적 사건, 문화적 배경, 지리적 위치, 영웅, 신화 이름에서 유래된 지명이 많다. 베링해, 로스해, 바렌츠해, 베핀해, 아문센해, 솔로몬해, 링컨해, 태주먼해, 보버트해, 벤쿠버, 에게해, 마젤란해협, 쿡제도, 베라자노해협, 황해 등이 그런 사례이다. 해양을 보유한 국가들은 해양 지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정책에 반영한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2006년 4월 동해 바다 해저지명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전 세계 해저지형 60여 개에 한글 이름을 등재하였다. IHO에는 대한민국 남해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어 이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2. 장보고 선단의 교역과 문헌
 
청해진 장보고 대사는 신라 흥덕왕의 지원을 받아 사졸(士卒) 1만 명의 병력을 모집해 828년 土地耕作, 漁撈, 製鹽, 牧畜, 畜馬, 배 건조, 자연재해 극복, 해상교통이 원활한 완도를 택해 청해진(淸海鎭)을 건립했다. 장보고는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 세력을 키워 중국 산둥반도 적산포와 일본 규슈 하카타(博多)에 무역기지를 마련해 무역을 활성화했다.1) 장보고 선단2)은 선진 조선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나침반을 사용하여 항해의 정확성을 높였다. 또한, 남방 항로 개척으로 이슬람 상인들이 가져온 서역의 물품을 비롯하여 고급 직물과 비단, 금은 세공품, 서적, 의약품, 금, 은, 수은, 구리, 토산품 등을 상호 교역하고 문화 교류를 촉진했다.
 
일본 하카타 항구는 장보고 선단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동아시아3) 해상 무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하카타는 당(唐), 신라, 일본, 인도차이나반도를 연결하는 남방 항로의 핵심 거점으로 소비와 수요가 함께 형성된 국제적인 무역항의 종착점이었다.
 
장보고 대사는 남방 항로 개척 이후 일본과의 공적인 무역 관계를 맺기 위해 문성왕 2년(840)에 이충(李忠)과 양원(楊圓)을 회역사(廻易使)로 파견했다. 《續日本後紀》4) 기록에 따르면 이충은 일본의 외교 및 무역을 관장하는 기관 다자이후(太宰府)에서 무역 활동을 하며 일본 조정의 묵인 아래 무역 활동을 넓혀가며 하카타항에 창고를 설치했다. 창고는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저장하기 위한 중요한 시설로 수입품과 수출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신속한 거래가 가능해져 상업 활동이 활발했다. 회역사는 신라의 대일 무역을 확대하고, 동아시아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를 가졌다. 그러나 일본 조정은 회역사를 공식적인 외교사절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신라의 신하가 외국에 사절을 보내오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례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회역사가 가져온 물품만을 교역하도록 허락했다. 장보고 선단은 월주요에서 생산된 청자를 일본에 교역하며, 청자 제조 기술을 도입해 강진 주변에서 생산했다.5) 일본 나라현에 있는 쇼소인(정창원, 正倉院), 도다이지(東大寺), 興福寺, 국립나라박물관, 延曆寺, 東福寺 등을 방문하여 신라 장보고 선단이 해당 사찰과 직접 교역한 문서 기록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직 확실한 사료를 찾지 못했다.
 
쇼무 텐노(聖武天皇, 701~756)가 생전에 아꼈던 물품을 중심으로 한 덴표문화(天平文化)의 진수를 보여주는 쇼소인(正倉院) 특별전을 여러 번 관람하면서 백제 의자왕(599~660)이 일본 황실에 선물로 보낸 진귀한 바둑판을 보았다. 바둑판의 몸체는 남아시아 스리랑카에서 크게 자란 자단나무로 제작되었고, 바둑알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다. 그 외에 신라장적 문서, 청동 숟가락, 新羅琴 등 여러 문화재를 보았다.
 
 
▲ 백제 의자왕이 일본 황실에 보낸 바둑판(사진:동아일보)
 
 
연구자는 장보고 선단이 일본에 진귀한 물품과 도자기를 교역하면서 황실과 사원, 부유한 귀족층이 선호하는 고급 말안장과 비단벌레 장식품 등을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장보고는 헤이안시대 초기 840년에 지쿠젠의 태수인 미야타마로와 무역 거래를 하며 일본 조정에 말안장을 진상하였다.6) 이에 태정관은 외국의 진상품을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환하는 명령을 내렸다.7) 태수는 말안장을 반환한 이후에도 장보고 선단에 일본 특산물인 후토오리(비단)를 주며 우호적인 교역을 지속하였다. 태수는 당나라 무역과 관련하여 모함을 받아 841년 정월에 물러났으나, 규슈를 떠나지 않고 장보고 선단과 교역을 하였다. 쇼와(承和) 10년(843)에 미야타마로는 모반혐의로 체포되어 이즈국(伊豆国)으로 유배되고, 아들 忠基는 사도(佐渡)로, 安恒은 고치현 도사(土佐)로 각각 유배되었다. 미야타마로 태수가 죽은 후 무고한 것이 밝혀져 역사적 평가가 달라졌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은 貞観 5年(863)에 교토 니조성 앞에 있는 신센엔(神泉苑)에서 열린 원혼을 달래는 제사 고레이카이(御靈會)에 그를 제신 오주(五柱)의 한 축으로 모셔 영혼을 위무했다. 御靈會는 헤이안 시대에 행해진 역병이나 재액을 가져온다고 생각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진정시키기 위한 축제로 훗날 기온마쓰리를 비롯하여 일본의 2,400개나 되는 마쓰리 제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續日本後紀》에는 승려들이 말을 타고 말안장에 대해 대화한 내용이 적혀있다. 최근 일본 고고학계에서 출토된 마구를 통해 볼 때 장보고 선단이 새로운 교역 품목으로 말안장 등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는 말(馬)이 없었고 백제 근초고왕이 아직기를 통해 암수 두 마리를 보낸 것이 처음이다. 당시 신라의 말 안장은 단순한 실용적 도구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공예품이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말안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어 1994년 황남대총 보고서를 작성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이은석 소장에게 말안장에 대해 질문했다. 이 소장은 “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비단벌레 말안장 장식은 전승이 끊겨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고 일본에 당나라의 말안장이 공급되었다.”라고 말했다.
 
당나라의 말안장은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며 금, 은, 황동으로 장식하고 작은 방울 마령(馬鈴)을 달아 말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는 효과를 나게 했다.
 
 
▲ 비단벌레 말안장 뒷거리개 장식(사진:국가유산청)
 
1975년 경주 황남대총 남분8) 부곽에서 발견된 비단벌레(玉蟲, 緋緞)9) 말안장 뒷거리개 장식은 60개의 용 문양과 2,000개의 비단벌레 날개로 꾸며져 있어 당시의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36년간의 작업을 통해 2011년 처음 공개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문화재 전문가는 〈황남대총 비단벌레 말안장 장식과 금동 발걸이〉 유물의 제작연대를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이라고 추정했다. 이 유물은 1600여 년 전 한반도에 자생하던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비단벌레의 날개10)는 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건조한 상태가 지속이 되면 색깔이 완전히 변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공개한다.
 
경주박물관은 뒷거리개 장식유물을 발견한 이후 보존처리기술이 없어 수장고에서 빛을 차단한 채 유물을 관리하다 2017년 보존처리기술 연구를 시작해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발굴조사의 기록을 2024년 보고서에 담았다. 비단벌레(Chrysochroa coreana Han and Park)는 죽어도 껍질이 바스러지지 않는 독특한 특성과 화려한 광채로 인해 의복, 마구류 등을 장식하는 치레거리로 사용되었다.11)
 
 
▲ 비단벌레(사진:국립생물자원관, 2012)
 
문화재청은 2008년 10월 8일 완도 등 전남 일부 지역에 있는 ‘비단벌레’를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비단벌레는 멸종위기종으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따른 법률」에 따라 허가 없이 채집하거나 사육할 수 없게 되었다. 생태학자들이 2019년에 처음으로 비단벌레(구슬벌레, Jewel beetle, 타마무시) 서식지인 완도 당인리12)와 해남 대흥사 팽나무 고사목을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 비단벌레는 17세기에 소빙기(小氷期) 때 온돌문화13)가 넓게 지방까지 확산하면서 전라도, 경상도 남부의 고목이 사라져 개체가 완전히 줄어들었다.
 
 
▲ 황금대총 금동관 비단벌레 장식(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2025년 5월 황금대총 금동관에서 비단벌레 날개 장식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금동관의 출(出)자 모양 세움장식과 관테' 거꾸로 된 하트모양의 구멍을 뚫어 장식했는데, 이 구멍 뒤쪽에 비단벌레 날개 15장이 붙어 있다.
 
김태식은 “비단벌레는 도교 사상 연관되며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불사(不死)14)를 향한 신라인들의 깊은 염원이 서려 있다.”라고 말한다.
 
 
▲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 재현품(사진:국가유산청)
 
 
2020년 12월 경주 황오동 족샘 유적지구의 44호 고분에서 발견된 ‘대나무 말다래 판자’는 안장 아래 늘어뜨리는 헝겁 쪼가리로 말이 달릴 때 튀기는 진흙을 막는 용도로 비단벌레 600개를 이용해 만든 꽃이 장식되어 있다. 봉분 지름이 30.8×23.1m로 크기가 신라 봉분 중 33번째인 무덤의 주인공은 10세 안팎의 신라 공주로 추정되며, 바둑돌이 발견되어 바둑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5세기 장신구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일본 고가(古賀)시 교육위원회는 2013년 후쿠오카현 고가 시 후나바루(船原) 고분 土坑을 발굴하고 2020년에 성과를 발표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비단벌레 무늬가 있는 6~7세기 마구를 처음 발견했는데, 하카다 지역에서 중요한 외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고가 시 교육위원회는 2024년 8월 27일 경주박물관 말다래를 초청해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일본 호류지(法隆寺) 대보장원(大寶藏院)에는 비단벌레 20,000마리로 만든 불감(佛龕)이 있다. 옥충주자(玉蟲廚子, たまむしずし)로 불리는 國寶는 법륭사 금당에서 불경과 경전을 보관했다. 불감 외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표현해 호랑이에게 몸을 공양하는 장면과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보시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15) 높이는 226.6cm, 폭 136.7, 깊이 119.1cm로 편백나무와 녹나무로 만들어 黑漆로 彩色했다. 금속 장식은 2,563마리의 비단벌레 날개를 붙여 비취색을 냈다. 비단벌레는 역사를 품은 귀중한 곤충이다.16)
 
옥충주자는 7세기 아스카(飛鳥)시대의 백제 장인들의 솜씨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로 연구자는 법륭사에서 실물을 보았지만. 어두워 《法隆寺》 책을 통해 내부 불상을 확인했다.
 
 
▲ 옥충주자(玉蟲廚子) 재현품과 진품(사진:法隆寺)
 
 
양수경(杨守敬, 邻苏老人, 1839~1915)은 후베이성 宜都市 출신으로 청대 민초의 뛰어난 서지학자로 중국에 없는 송판(宋版)을 일본에서 발견해 《樊川文集》을 교정하고, 조각가 陶子麟에게 책을 새기게 했다.
 
 
▲ 杨守敬批校红印校样本《樊川文集》(사진:光明日報)
 
 
장보고에 관한 문헌은 당나라 문인 두목(杜牧)이 쓴 《樊川文集》 권 6 〈張保皐 鄭年 傳〉에 처음 등장하며 《新唐書》 《文獻通考》 《三國史記》 《三國遺事》 慈覺大師 圓仁(794~964)의 《入唐求法巡禮行記》, 《日本後記》 《續日本記》 《續日本後記》에 기록이 남아있다. 엔닌은 838년 7월에 입당하여 847년까지 9년 반을 머물다 장보고 선단의 도움으로 일본에 돌아가 천태종 3대 좌주(座主)가 되었다.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赤山禪院을 세우고 赤山大明神을 모셔라.”라고 유언했다. 1934년 김상기17) 교수가 장보고 논문을 처음 발표하고, 주일대사를 지낸 하버드대학교 에드윈 라이샤워18) 교수가 《入唐求法巡禮行記》를 영어로 번역하며 장보고를 ‘무역왕’이라고 불렀다.
 
일본 와세다 대학 경제학부 다나카 후미오(田中史生)19)교수는 “장보고 대사의 직함이 신라의 정규 관제에 보이지 않는 관명으로 唐의 令外官(使职)20)에 해당된다. 대사가 수행한 교역 역시 공적 성격을 지녔고, 당 후기에는 율령체제를 능가하는 역할을 하고 청해진 대사 역시 국가 기구에 속한다.”라고 주장한다.
 
 
3. 맺은말
 
2025년 6월 4일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북극 항로 개척을 목표로 삼아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결정했다. 한국이 무역 강국으로 성장한 원천이 무역왕 장보고 대사이다. 정부는 청해진 1,200주년 역사적 사건을 맞이하여 한반도 남해의 바다 지명을 장보고해(張保皐海, The Sea of Chang PoGo)로 수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각주
 
1) 鄭炳俊, 〈押新羅渤海兩蕃使와 張保皐의 對唐交易〉, 《中國古中世史硏究》, 2009.
2) 新飼早樹子,〈5~9세기 新羅의 對日 交涉 硏究〉,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58p, 2023.
3) 黃俊杰, 국립대만대 석좌교수, 동아시아는 문화사적으로 볼 때 인도차이나반도를 포함한다.
4) 《續日本後記》는 닌묘 천황 때인 덴초 10년(833년)부터 가쇼 3년(850년)까지 18년 역사를 기록했다. 분토 쿠 천황의 칙명에 따라 사이쿄 2년(855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정관 11년(869년)에 완성되었다.
5) 고야마 후지오(小山富士夫, 1900~1975) 선생이 ‘월주요 기원설’을 처음 주장했다.
6) 하마다 고사쿠(濱田耕策)는 장보고 대사는 상인 차원이 아닌 신라왕권 외교 전개 목적을 가졌다.
7) 《續日本後紀》 朝日新聞本 《卷十承和八年(八四一)二月戊辰【廿七】》○戊辰。太政官仰大宰府云。新羅人張寳高。去年十二月進馬鞍等。寳高是爲他臣。敢輙致貢。稽之舊章。不合物宜。宜以禮防閑。早從返却。其隨身物者。任聽民間令得交關。但莫令人民違失沽價。競傾家資。亦加優恤。給程粮。並依承前之例。
8)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황남대총 남분》, 2024, .
9) 모로하시, 《大漢和辭典》에 길정(吉丁), 길정충(吉丁蟲, ‘타마무시’(タマムシ)라고 소개되어 있다.
10) 이시진(李時珍.1518∼1593), 《본초강목』(本草綱目)》 길정충’(吉丁蟲), 미약(媚藥) 약물로 쓰였다.
11) 김태식, <특별기고-불사(不死)의 염원, 옥충(玉蟲)>, 《민속소식》97, 국립민속박물관, 2003. 9.
12) 정은영, 〈천연기념물 비단벌레 서식 조사 현황(전남지역)〉, 《한국환경생태학회 논문집》, 2019.10
13) 김준봉, 〈문헌에 의해 분석된 한국 전통온돌의 역사와 특성,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논문집》, 2008.
14) 김태식.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2002.
15) 「捨身飼虎図」, 「施身聞偈図」, 《法隆寺》 67p, 2006.
16) 영월천연기념물곤충연구센터 비단벌레 생활사 규명(2024.3), 대량증식 가능, 문화재 복원 활용,
17) 김상기, 「古代의 貿易 形態와 羅末의 海上發展에 就하야」, 《진단학보》, 1934.
18) Reischauer, Edwin O. 《Ennin’s travels in Tang China》, 1955.
19) 정병준, 「唐代의 互市와 張保皐의 對唐交易」, 《중국사연구 제69집》, 2010.
20) 일본에서 令外官에 해당하는 관직이나 관청은 섭정(摂政), 관백(關白), 太政官의 中納言, 参議, 장인소(蔵人所), 検非違使, 勘解由使, 按察使, 鎮守府将軍, 征夷大将軍이 있다. 唐代의 令外官은 内大臣, 中纳言, 参议, 度支使, 盐铁使, 租庸使, 转运使, 按察使、采访使 등이 있다.
【문화】 궁인창의 논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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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보고 선양정책발굴보고서 - 3. 역사문화의 보고, 전남
(2025.07.13. 23:42)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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