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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좋은 정보 수집
◈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 양상과 문학적 의미
이 논문의 목적은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과 문학적 의미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보는 데 있다. 세대를 초월한 강인한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토대, 그녀가 종횡으로 누볐던 ‘공간’의 양상에서 문학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韓民族語文學 第70輯 (2015년 8월)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 양상과 문학적 의미
김현화*
 
차 례
Ⅰ. 서론
Ⅱ.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
Ⅲ. 여성영웅 공간의 문학적 의미
Ⅳ.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과 문학적 의미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보는 데 있다. 세대를 초월한 강인한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토대, 그녀가 종횡으로 누볐던 ‘공간’의 양상에서 문학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첫째, 유리(遊離)공간의 독립적 구성이라는 양상이다. 여성영웅소설만의 특정한 이야기 틀이 바로 ‘유소년기’의 고행담으로 구조화된 유리 공간이다. 부모와 유리된 강과 갈대밭은 인간의 추악한, 혹은 본능적 욕망과 결부되어 등장인물의 내면을 투영한다. 이 유리 공간은 여주인공의 영웅성 내지는 공명심을 자극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둘째, 이적(異蹟) 공간의 표면적 낭만성이란 양상이다. 전기소설과 영웅소설의 경우 그 장르의 성격상 ‘낭만적 이적’에 상당 부분 서사적 음조를 받았다. 「홍계월전」역시 이러한 낭만적 이적 공간에 여주인공의 영웅성을 의탁하고는 있으나, 상당 부분 현실적 서사로 이끌어 나가고자 한 흔적이 도처에서 돋보인다. 갈대밭 공간과 벽파도, 전장(戰場) 공간은 여주인공 홍계월의 영웅성을 낭만적 이적으로 답보하면서도 현실적 개연성으로 이끄는 공간들이다.
 
셋째, 공훈(功勳) 공간의 배타적 잔혹성이란 양상이다. 여성 영웅화의 의지와 성격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바로 공훈 공간이다. 여주인공 자신이 안주하지 못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배타성은 잔혹한 일면으로 나타나는데, 그 공간이 바로 공훈 공간이다. 공명심이 지나쳐 잔혹함마저 주는 것은 계월의 영웅성이 그만큼 당대의 제도와 관습을 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한편으로 이 배타성은 한 인간으로서 부여 받은 천품을 실현해 내는 방편으로 활용된다.
 
Ⅲ장에서는 여성영웅 공간의 문학적 의미를 탐색해 보았다. 남성의 이상적 지향점이었던 영웅상이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는 장치로 문학 속에서 구가되었다고 해서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홍계월전」은 여성영웅을 통해 천품의 실현이라는 유교의 기저사상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욱 견고한 유교적 세계관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성영웅의 천품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운용한 명분과 실리는 유교사상의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면을 시험해 본 문학적 수용이자 사회적 수용이기도 하다. 비록 제도적 결함을 노출시키고는 있으나, 유교사상의 본질은 여전히 와해되지 않고 세계를 구축하는 중심축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 역할을 사회의 소외 계층이었던 여성을 통해 반증함으로써 유교적 세계의 타당성을 유도한 것이다.
 
주제어 : 고전소설, 홍계월전, 여성영웅소설, 소설 공간, 천품, 영웅
 
 
*  충남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 초빙교수.
 

 
Ⅰ. 서론
 
조선 후기에 영웅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들이 대거 출현하는데, 남성 인물의 영웅상 구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었다. 이에 반하여 여성 인물의 영웅적 활약을 담은 작품들이 출현하여 독자층을 매료시키는데, 이를 여성영웅소설1)이라 일컫는다. 여성영웅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위업을 전면에 내세워 당대의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데 있다. 여성의 위업이라 함은 남성의 입신양명과 동궤에 서는 사회적 입지를 굳히는 것으로, 과거 급제를 통해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획득함은 물론 전란에서 가정과 국가를 구원해 내는 대내외적 위업을 뜻한다. 이는 일반여성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구가하고자 하는 삶의 형태와 사뭇 대비되는 점이다. 여성의 자발적 의식의 발현과 동시에 사회적 역할 수행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 출현 의미가 크다.
 
여성영웅의 문학적 출현과 사회적 수용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에 천착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홍계월전」이다. 여성영웅소설이 모색되던 17세기 말부터 나름의 장르관습이 확립되던 18세기 말까지를 초기 여성영웅소설시대로 규정하고, 이것이 필사본, 방각본, 활자본으로 활발하게 유통되던 19세기 초반부터 1910년대까지를 본격 여성영웅소설시대로 규정한다면2) 「박씨전」을 통해 여성의 존재론적 사유체계와 실존 양태를 모색하던 여성영웅소설이 1819년 필사본 기록이 남아 있는 「홍계월전」에 이르러 그 서사구조의 미학적 기반을 완성했으리라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학사적 내지 문학적 의미론에 부합하는 작품 고유의 특성 때문에 그간 「홍계월전」에 대한 논의는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간의 연구 동향은 여성영웅의 출현 동인을 여성의식(여성성)의 사회적 확대와 변화, 여기에 여성 독자층의 수요를 함께 논의하거나3), 그 장르 관습에 있어 남성영웅소설에 맞추어 파생한 연속물4), 혹은 대중적인 방각본 소설의 성행에 따른 결과물5), 중국 소설의 영향6), 작품의 이본 재고와 통찰7) 등 여성영웅소설의 작품 외적 출현 동인에 주로 주목했다. 한 걸음나아가 작품 내적으로도 주목한 연구들이 있어 눈에 띤다. 「홍계월전」의 인물과 인물관계8),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갈등 양상에 따라 새로운 주제 의식을 파악하고자 했던 논의9)가 그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홍계월전」의 연구는 내적 형성 요인보다는 외적 형성 요인에 그 논의를 맞추어 왔기 때문에 문학적 의미를 재구하는 의론이 필요해 보인다. 변화와 격동의 시기에 출현한 여성영웅 홍계월의 문학적 해석을 다시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문학적 인간은 영겁의 삶을 추구하는 우주적 존재이자 찰나의 순간을 갈망하는 현실적 존재이다. 홍계월은 이러한 양면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이해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당대의 터전, 곧 초월계적 삶과 현실적 삶을 표상하는 존재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단서를 추적한다면 이 작품의 미학적 기반을 한 층 더 탄탄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초월한 이 강인한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토대를, 그녀가 종횡으로 누볐던 ‘공간’의 양상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시발점이다. 아쉽게도 그간의 논의들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중량감 있게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홍계월만의 공간 양상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공간은 등장인물이 추구했던 삶의 목표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은유적이고도 상징적인 자리이다. 인물이 공간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인물의 연속적 행위와 사건만이 표면적으로 처리되기도 하지만, 조선후기 소설로 넘어오면서 공간이 인물의 사고와 행위에 일정한 제약과 약동의 기능을 하며 서사적 골격에 구조적 기능을 하는 것은 물론 미학적 측면에서도 각 작품만의 매력적 요소로 살아나기도 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우선 Ⅱ장에서는 「홍계월전」여성영웅 공간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홍계월의 삶 가운데 가장 독창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지정해 이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할 것이다. 첫째, 유리(遊離)공간의 구조적 독립성, 둘째, 이적(異蹟) 공간의 표피적 낭만성, 셋째, 공훈(功勳) 공간의 배타적 잔혹성이라는 측면에서 「홍계월전」만의 공간 양상을 유추해 본다. Ⅲ장에서는 그 공간들의 양상이 말하고자 하는 문학적 의미를 구성해 볼 것이다. 여성영웅에게 그와 같은 공간들이 필요했던 이유와 선대 작품과의 유기적 혹은 독립적 관계를 찾아 문학적 의미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식의 성장과 선대의 장르관습 이행 작품이라는 논의에서 벗어나, 이 작품만의 미학적 기질을 선별해 낼 수 있는 연구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10)
 
 
1) 이 명칭은 민찬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가 되었다.(민찬, 「여성영웅소설의 출현과 후대적 변모」,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여성영웅의 호칭에 대한 명칭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었다. ‘여걸소설’(성현경, 「여걸소설과 설인귀전」, 국어국문학62․63 합병호, 국어국문학회, 1973), ‘여호걸계소설’(정명기, 「여호걸계소설의 형성 과정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여장군소설’(여세주, 「여장군 등장의 고소설연구」,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여장군형 소설‘(손연자, 「조선조 여장군형소설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여성계영웅소설’(전용문, 「여성계영웅소설의 형성동인」, 『목원어문학』4, 목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3)
2) 정준식, 「초기 여성영웅소설의 서사적 기반과 정착 과정」, 『한국문학논총』61, 한국문학회, 2012, pp.48-52 참조.
3) 박명희, 「고소설의 여성중심적 시각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전용문, 「한국여성영웅소설의 연구」, 목원대학교 출판부, 1996. ; 김연숙, 「고소설의 여성주의적 시각 연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 정병헌․이유경, 『한국의 여성영웅소설』, 태학사, 2000. ; 정규식, 「홍계월전에 나타난 여성우위의식」, 『동남어문논집』13, 동남어문학회, 2001. ; 최재호, 「보급 형태로 본 여성영웅소설의 향유층 문제 시론」, 『퇴계학과 한국문화』 통권45,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9. ; 정언미, 「홍계월전의 여성의식 연구」,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4) 정명기, 「여호걸계소설의 형성과정 연구」, 연세대 석사학위논문, 1980. ; 심진경, 「여장군계 군담소설 홍계월전 연구」, 『한국여성문학비평론』, 개문사, 1995. ; 류준경, 「영웅소설 장르관습과 여성영웅소설」, 『고소설연구』12, 한국고소설학회, 2001.
5) 임성래, 『조선후기 대중소설』, 보고사, 2008.
6) 성현경, 앞의 논문. ; 여세주, 앞의 논문.
7) 정준식, 「홍계월전 이본 재론」, 『어문학』101, 한국어문학회, 2008. ; 정준식, 「홍계월전의 구성원리와 미학적 기반:단국대 103장본 계열을 중심으로」, 『한국문학논총』51, 한국문학회, 2009.
8) 이연남, 「사상의학에서 본 홍계월전의 인물유형 연구」,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 김정녀, 「타자와의 관계을 통해 본 여성영웅 홍계월」, 『고소설연구』35, 한국고소설학회, 2013.
9) 이인경, 「홍계월전 연구:갈등양상을 중심으로」, 『관악어문연구』17, 서울대 국문과, 1992. ; 부가영, 「여성영웅소설의 갈등양상 연구:옥주호연, 홍계월전, 방한림전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10) 「홍계월전」(장시광 옮김), 『여성영웅소설, 홍계월전』(한국중앙연구원 소장 국한문혼용 45장본), 이담북스, 2011.
 
 

 
Ⅱ.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
 
1. 유리(遊離) 공간의 독립적 구성
 
여성영웅소설은 그 형성의 기반을 영웅소설과 관련지어 접근했고, 항상 영웅의 일생과 관련된 신화적 성격의 서사라는 측면에서 논의11)했던 바, 그 구조의 유형적 독창성에 대한 주장만큼은 한 걸음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구조의 유형적 독창성이란 애정담이면 애정담, 군담이면 군담 등의 일정한 삽화적 틀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여성영웅소설만의 특정한 이야기 틀이 이 논문에서 주목한 공간의 특질과 맞물리고 있어 눈에 띤다. 바로 ‘유소년기’의 고행담으로 구조화된 유리 공간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유소년기 고행담의 시발점은(여성영웅을 다루는 측면에서 많이 거론되는) 바리데기라고 할 것이다. 바리데기는 오로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궁 후원에 유기되어 날짐승의 보호를 받으며 연명하다가 옥함에 담긴 채 황천강과 유사강 사이의 피바다에 내던져진다. 석가세존이 돌배를 타고 사해를 돌다가 그 옥함을 발견해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할미에게 이끈다. 아이가 팔구세가 되니 저절로 글이 터져 천문과 병법에 두루 능통해진다.
 
물론 바리데기의 유리담 안에 바리데기만의 능동적 행위가 적극적으로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대 여성영웅소설의 유소년기 유리 공간의 구조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성영웅이 성장해 나가는 구조적 장치로서 유리 공간이 중요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본격적 여성영웅소설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박씨부인전」에서는 이 구조적 틀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다. 그녀의 유소년기 고행담이나 유리담은 출현하지 않은 채 바로 성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적으로나 사회적 측면에서 여성영웅의 전면적 등장이 낯선 장치였기 때문이란 단서를 붙여 볼 수 있다. 그 뒤에 등장하는 거개의 여성영웅소설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러한 유리 공간이 한 편의 극화처럼 독립적으로 수용되어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대로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작가와 독자의 측면에서 여성영웅의 등장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결과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예컨대 「옥주호연」의 자주와 벽주, 명주 세 자매는 열 살이 되도록 여공(女工)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활쏘기와 칼쓰기, 말타기를 즐기니 그 부친이 딸들을 죽여 없애겠다고 하는 가운데 유리 공간이 형성된다. 세 자매는 금의환향하겠다는 유서를 써 놓고 집을 떠나 광련산에 은거하는 진원도사를 찾아간다. 이런 경우는 여성영웅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쌓기 위해 부모와 유리된 공간을 스스로 자청한 결과이다. 「이현경전」의 유리 공간 역시 10세 때 부모가 구몰하자 여주인공 현경이 옥천산 금동의 청허도인을 찾아가 수학하고, 「장국진전」의 계향은 아버지가 간신의 모함에 걸려 옥사하고 어머니마저 자결하자 고아가 된 채 시비 초운과 고향 강주에서 선녀에게 팔광검과 병서를 익히고 검술을 배우며 영웅으로서의 기초를 닦는다. 「정수정전」의 정옥 역시 부친이 유배지에서 한 많은 세상을 뜨고 모친마저 죽자 졸지에 고아가 되어 유모와 함께 원수 갚을 계획을 세운다. 부친이 관찰사로 있던 성주 땅으로 가 이름을 고치고 여러 가지 학문과 무술을 공부하며 영웅으로서의 출현을 준비한다. 「방한림전」의 관주 역시 8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나자 삼년상을 치른 뒤 스스로 가사를 총집하고 학업에 몰두하여 12세에 과거 길에 오르며 여성영웅의 길로 나아간다. 이렇듯 여성영웅의 유소년기에 등장하는 유리 공간은 가정과 바깥 세계(주로 조력자인 도인이 사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서 비롯하며, 그녀들의 내면에 품고 있던 영웅상을 보여주는 인물로 거듭나는 구조로 작용한다.
 
「홍계월전」역시 이러한 유리 공간 면에서 두드러진 독립적 구성을 갖춘 작품이다. 홍계월은 나이 5살이 되자 북방 절도사 장사량과 양주 목사가 모의해 일으킨 병란 속에서 부모와 헤어진다. 그 유리 과정이 앞서의 작품보다 확장된 구조적 독립성을 띠고 있다. 계월은 시비 등에 업혀 모친과 강을 따라 남쪽으로 피신하는데, 도적이 이십 리에 걸쳐 추격을 하므로 긴장감이 더한다. 계월 일행은 갈대밭 속에서 피신해 있다가 수적 장맹길에게 붙잡힌다. 이때 장맹길은 계월을 자리에 싸서 강물에 던진다. 계월은 자리에 싸여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서촉 땅으로 가던 무릉촌 여공에게 가까스로 구조된다. 여공은 계월의 비범한 얼굴을 보고 동갑인 자신의 아들과 잘 길러서 미래에 영화를 보리라 다짐한다.
 
계월이 부모와 유리되는 이 대목이 서사의 골격을 탄탄하게 하는 구조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그 강과 갈대밭이 인간의 추악한, 혹은 본능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적 장맹길은 부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이 취하고자 계월을 강물에 던졌고, 여공은 계월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앞날의 영화를 취하고자 양자로 들인다. 전자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후자는 자신의 공명을 위해서 계월의 유리 공간에 출현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계월의 유리 공간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투영하며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서사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즈음해서 이러한 유리 공간이 왜 여성영웅소설마다 특정한 구성물로 자리 잡아야 했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차례이다. 영웅은 사회적 구성원이자 그 사회를 대표하는 정점의 기능을 수행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공간이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유리 공간은 그와 같은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영웅의 공적이고도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12)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유리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여성영웅의 공적이고도 지도적 출현이라니, 그녀들이 필연적으로 가정에서의 탈출을 요구13)하는 기법으로 유소년기의 유리 공간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영웅은 천부적 역량과 자질을 갖고 태어났지만 어떻게든 가정 밖으로 자신을 돌출시켜야 했고, 당대의 제도권 안에서는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유소년기의 유리 공간을 통해 가정에서 바깥으로 경계를 넘어서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을 통해 그 유리 공간을 이처럼 현실감 있게 구성하여 독립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보아야 한다. 부모의 구몰만으로 거기에 탄력을 받아 여성이 바깥세계로 그처럼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자신을 보호하고 위장할 만한, 그러니까 당대의 제도권을 주도하고 살아가고 있던 남성과 대등하게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바로 남복 개착14)이었다. 홍계월은 부모의 나이 40에 어렵게 얻은 자식인데, 부친이 계월의 단명을 우려해 곽 도사를 찾아가 관상을 본다. 곽 도사는 계월의 운명이 부모와 이별했다가 재회하며 입신양명하여 높은 벼슬을 하며 녹봉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부친은 그 날부터 계월에게 남자 옷을 입혀 초당에서 글을 가르친다. 이 남복은 계월이 남성의 영역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며 변화해 가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아울러 이 남복 개착이 잠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15) 외연을 확장해 주는 것이 유리 공간이다.
 
홍계월이 역적과 수적에게 쫓기다 고아로 전락한 그 강과 갈대밭이라는 유리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부인 여공을 만나 남성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홍계월이 남복 개착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부모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양친과의 유리 공간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신양명에 관여하는 작용을 한다. 장장 13년에 걸친 계월의 수난과 극복과정은 철저히 곽 도사의 예언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므로 이 ‘예언구도’가 이 작품의 전체 서사를 지배하는 핵심구조로 작용16)하지만, 공간의 분할면에서 초반부의 이 유리 공간이야말로 여주인공의 영웅성 내지는 공명심을 자극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핵심구조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공간을 계기로 조력자를 만나고 남성의 세계로 진출하는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홍계월전」은 여성영웅소설의 서사적 구조면에서 유리 공간의 독립성을 다른 작품보다 정교하게 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특히 부수적 등장인물의 욕망이 교차하며 살아나고, 그런 가운데 여주인공이 영웅성을 획득해 가는 공간을 선보인 점이 독창적이다. 「박씨부인전」이나 「장국진전」에 등장하는 여성영웅들처럼 남성의 후면에서 음조 형태의 영웅성을 드러내는 인물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당대인의 욕망과 갈등이 삶의 양태로 현시되는 것이 공간이라고 할 때, 「홍계월전」의 유리 공간은 여성영웅의 영웅성을 공고히 다지는 개성적 기능을 다한다. 아울러 여성영웅소설만의 양상을 두드러지게 하는 창작 기법의 한 면모로도 다가온다.
 
 
2. 이적(異蹟) 공간의 표면적 낭만성
 
문학작품 안에서 당대인이 이적을 희구할 때는 그 시대의 총체적 난국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때이다. 말 그대로 기이한 행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정도(正道)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나 인물에 대한 역심을 그 힘이라도 빌어 바르게 잡고 싶은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이적이 일어나는 공간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은닉되어 있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사문학에 등장하는 두 개의 태양과 관련한 불길한 이적 공간(「혜성가」)이나 잣나무 아래서 맺었던 신의를 저버리자 그 나무가 누렇게 시들어 버리는 이적 공간(「원가」) 등이 그 사례이다. 고전소설은 이와 같은 서사문학의 풍부한 낭만적 이적현상을 수용했는데 시대의 흐름과 독자의 의식 성장에 따라 그 강도를 조절하였다.
 
특히 전기소설과 영웅소설의 경우 그 장르의 성격상 ‘낭만적 이적’에 상당 부분 서사적 음조를 받았다.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간과 귀신의 애정을 다룬다든지(『금오신화』나 『기재기이』 등),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조력자로부터 전수 받은 신이한 군담 이야기에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행적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며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낭만적 환상이야말로 여성이 영웅으로 급부상하는 데 일조했다. 문학작품이 인간의 삶을 올곧이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세계로 나아가 학문과 무공 면에서 남성과 대등하거나 우월한 이력을 쌓는 일이 당대인의 사유체계 안에서는 무조건 수용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유체계를 무난하게 허물어트린 것이 바로 이 낭만적 이적의 공로이다.
 
「김희경전」의 여주인공 설빙이 부친의 시신을 거두고 강물에 뛰어들어 명을 끊고자 할 때 이영이란 사람이 이미 죽은 그녀를 환혼주(還魂珠)로 소생시키는 이적이라든지, 「방한림전」에서 방한림이 어느 가을 날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시를 읊으니 갑자기 벼락이 치며 별이 떨어져 내렸고, 그곳에 ‘낙성’이란 글자를 가슴에 새긴 어린아이가 있어 양아들로 삼았다든지, 「장국진전」에서 유부인과 이부인이 하늘의 별 상태를 보고 자객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거나, 이부인이 팔광검을 들고 천리 비룡마에 앉아 푸른 무지개로 몸을 가리고 남편을 구하러 간다든지 하는 이적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적 현상은 여성영웅의 기개와 능력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며 독자의 입장에서도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한편으로는 영웅소설이 여성의 것이 되었다는 것은 18세기 중기 이후 여성으로서 능력을 펼칠 공간이 제한되었다는 것의 반증17)이란 주장에도 주목해 볼 만하다. 남성의 공간에서 대등한 삶을 영위할 수 없었던 여성이 낭만적 환상에 힘입어 등장한 것이 여성영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홍계월전」역시 이러한 낭만적 이적 공간에 여주인공의 영웅성을 의탁하고는 있으나 상당 부분 현실적 서사로 이끌어 나가고자 한 흔적이 도처에서 돋보인다.18) 계월과 모친이 20여 리에 걸쳐 도적들의 추격을 당한 끝에 큰 강에 이르렀는데, 선녀가 조각배를 타고 나타나 구해주는 이적이 일어난다. 선녀의 조각배에 의지한 채 도적의 추격을 피해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했다면 이 부분은 현실성을 얻기 힘들다. 그런데 부인 일행은 선녀의 도움에서 벗어난 뒤에도 도적의 추격을 당한다. 결국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 피신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칡뿌리를 캐 먹고 버들개지를 훑어먹으며 연명하는 서사로 넘어가며 현실적 인과성을 갖춘다. 그 뒤에는 수적 장맹길에게 부인이 잡혀 가고 계월은 강물로 던져진다. 이계의 신비로운 힘과 조력으로 환난을 극복하는 서사에서 탈피하기 위한 서사이다.19)
 
이러한 구도의 사실적 환난 극복20)은 계월의 모친이 꿈에 육환장을 짚은 중이 나타나 벽파도에서 남편과 재회할 것을 알려주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벽파도에 가니 과연 남편이 있는데, 의복이 남루하고 온몸에 털이 돋은 채 강변을 돌며 고기를 주워 먹고 있었다. 그 전에 벽파도에 의지한 시랑의 현실이 먼저 제시되는데, 그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밤낮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해 물가에 다니며 죽은 고기와 바위 위에 붙은 굴을 주워 먹으며 세월을 보냈는데, 의복이 남루하고 온몸에 털이 나 짐승의 모습 같았다는 서술이 먼저 나온다. 낭만적 이적의 환상성을 거세해 나가는 장면이 이처럼 사실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 가지 더 낭만성의 거세에 대한 단서를 찾자면 홍계월이 철통골과의 싸움에서 계략에 빠져 불구덩이에 휩싸였을 때 곽 도사가 준 봉서를 날리고 용(龍)을 세 번 부르자 서풍이 불고 검은 구름이 일시에 일어나 뇌성벽력이 진동하더니 소나기가 내려 타오르던 불길이 일시에 스러진 경우이다. 이 공간에서의 서사만으로 승패를 마쳤다면 말 그대로 낭만적 이적의 힘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철통골이 벽파도로 달아나면서 그곳의 양친과 재회하는 서사로 넘어가며 환상과 현실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다.
 
이처럼 갈대밭 공간과 벽파도, 전장 공간21)은 여주인공 홍계월의 영웅성을 낭만적 이적으로 답보하면서도 현실적 개연성으로 이끄는 공간들이다. 이 공간들에서의 투쟁으로 그녀는 천자의 신임을 얻게 되고, 자신이 부리던 보국과 혼인도 치르게 된다. 물론 그 혼례 이후에도 홍계월의 영웅성은 남편인 보국을 압도하는데22), 이 역시도 남성 세계 위에 군림하는 여성의 실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남기는 지점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소설화하였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당대인의 안목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펴본 것처럼 「홍계월전」은 여느 여성영웅소설에 비해 현실적이고도 객관적 사유체계 안에서 전대의 창작 관습, 곧 환상적 낭만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구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을 명확하게 지목하고 있으며, 사실적 표현을 통해 의도한 만큼 낭만성을 탈피해 내고 있다. 이는 「홍계월전」이 근대적 사실 기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영웅의 현실적 존재성에 대해 반목할 만한 시선을 차단하겠다는 작가와 독자의 공감어린 합의로도 다가온다. 반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낭만적 이적을 통해 여성영웅의 자질을 드높이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전통적이고도 관습적인 영웅상의 구현에 부합하고자 하는 의도23)도 읽을 수 있다.
 
 
3. 공훈(功勳) 공간의 배타적 잔혹성
 
여성의 남장과 군담 행위는 주인공의 영웅화에 대한 욕구와 의지, 즉 그의 성격에서 비롯한 것24)이다. 이 영웅화의 의지와 성격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바로 여성영웅의 공훈 공간이다. 공훈 공간은 군담 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 군담 공간은 수직적이고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여성영웅의 출현과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배경이다. 여성이 남성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남성에 대한 배타적 징치, 나아가 같은 여성에 대한 혹독한 징벌을 가하기도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는 여성영웅소설의 여주인공이 지니는 이중성25)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홍계월이 남장한 여성이었을 때나 마찬가지로 여성영웅으로서 활약하며 그 존재적 의의를 부각시켜 나갈 수 있었던 데는 주체를 경험한 여성영웅 홍계월의 지향 의식이나 함양된 영웅적 능력 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그 영웅성을 인정하고 여성영웅의 존재를 지지한 타자들의 협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26)는 견해 역시 시선을 둘 만하다. 그런데 홍계월의 타자를 향한 시선에는 철저한 배타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타자에 대한 철저한 배타성, 그것은 곧 남성에 대한 배타성이자 같은 여성에 대한 배타성이기도 하다. 여성영웅의 공간을 확보해 고전소설 안으로 대물림해 준 서사문학의 사례를 보자. 바리데기 공주는 남성인 부왕의 혹독한 내침으로 세상에 던져졌고, 암묵적으로 어떠한 힘도 보태지 못한 모후 역시 자신을 유기한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부모를 위해 영약을 찾아 길을 나섰고, 험로 3천 리를 건너 만난 무상신선이란 인물은 약수 값 대신 물을 삼 년간 길어 주고, 불을 삼 년간 때 주고, 나무를 삼 년간 베달라고 요구한다. 9년 뒤에는 일곱 아들까지 낳아 달라고 한다. 바리데기는 부모를 봉양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무상신선에게 얻은 약수로 부모를 구하고, 바리데기는 만신(萬神)의 인위왕(人爲王), 곧 무조신(巫祖神)이 되어 떠난다. 그녀는 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와 목숨 같은 자식을 두고 지하의 세계로 떠났을까. 3천 리 노정 끝에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타자에 대한 배타성, 충과 효로 위장된, 그 이중적 사유 안의 영웅성을 발견해 낸 것은 아닐까. 그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험난한 노정에 들어야 했던 운명에 대해 자성하고 불현듯 모든 인간을 뛰어넘는 영웅성에 도전한 것이 아닐까.
 
「홍계월전」의 계월은 바로 이러한 영웅성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인물이다. 그녀 역시 비범한 기상을 갖고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친의 선택에 따라 남장을 하고 자란다. 자신을 위대한 남성의 영역에 서게 하고 싶었던 부친의 영향 속에서 여성성을 제거하기도, 그렇다고 완전한 남성성을 갖출 수도 없었던 홍계월의 내면에 어느덧 이들 모두에 대한 강렬한 배타성이 자리 잡는다. 자신이 안주하지 못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배타성은 잔혹한 일면으로 나타나는데, 그 공간이 바로 공훈 공간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공훈을 세운 공간만이 여성인 홍계월이 남성을 능가하는 지위와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계월전」의 공훈 공간은 성격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적 공훈 공간이다. 주로 남편인 보국과 양친, 천자와 대신 등 주변인물과 얽힌 공간인데, 유독 남편을 향한 배타적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것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한스러움과 남복을 개착한 채 살아도 끝내 넘어설 수 없는 여성성에 대한 애증어린 심리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적(私的) 공훈 공간에서의 계월은 천자부터 양친, 시비와 노자까지 모두 두려워하는 광포한 기질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성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두번째는 계월이 적군을 맞아 싸우는 군담을 다룬 공적(公的) 공훈 공간이다. 적군에 대한 지략과 용맹함으로 자신의 영웅성을 과시하는 공간이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직첩을 그대로 유지해 준 천자에 대한 은공과 그에 맞는 영웅성을 확보하고자 그녀는 전투가 일어나는 공간에서 누구보다 용맹한 위력을 과시한다. 용맹하다 못해 섬뜩할 만한 행위를 과시함으로써 여성인 자신이 대원수의 지위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심리가 지나쳐 잔혹함마저 주는 것은 계월의 영웅성이 그만큼 당대의 제도와 관습을 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사적 공훈 공간의 배타성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서관과 서달의 난 때 천자는 평국을 도원수로 삼고 보국을 대사마 중군 대장에 봉한다. 보국이, 자신이 전투에 나가 공을 세우고자 출격하나 적병에 둘러싸여 죽게 될 형편에 이른다. 이때 계월이 준총마를 몰고 나와 보국을 구한 뒤 적장 오십여 명을 한 칼로 베고 종횡무진하며 공훈을 세운다. 계월은 보국을 꿇리고 대국에 수치심을 안겼으니 국법으로 죽이겠다고 대노한다. 이에 장수들의 만류로 보국은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남편인 보국을 배려하는 모습은 일면도 보이지 않는 배타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난리를 평정한 계월의 위상은 천자와 백관들이 수레도 마다하고 친히 걸어서 그녀를 마중 나가는 공간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나 곧 계월은 위중한 병이 들어 천자가 보낸 어의를 통해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 나자 “자신이 남자 못 된 것을 한스러워” 눈물을 흘린다. 그간의 공훈을 인정받아 천자는 남성으로 살아온 계월의 죄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천자는 계월과 보국, 두 사람의 혼인을 중매한다. 계월은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하게 되자 또 다시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원망을 하는데, 이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 양성에 대한 배타성의 표출이라고 할 것이다. 혼례 전날 마지막 군례를 핑계로 남편인 보국을 대령토록 한다. 이에 보국은 즉시 군례에 응하지 않고 태만한 태도로 자신의 아내가 될 계월에 대한 수직적 관계를 인식시키려 한다. 화가 난 계월은 군사들에게 일러 보국을 장대 앞에 꿇리는 것으로 욕보인다.
 
계월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타자에 대한 배타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여성인 영춘, 보국의 애첩을 향해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자신의 명성에 굴하지 않은 채 남편의 힘만 믿고 예를 갖추지 않는 영춘을 교만하고 요망하다 하여 무사를 호령해 단칼에 베도록 명한다. 군졸과 시비 등이 겁을 내어 바로 보지 못할 만큼 단호한 명이었다. 작품 전면에 영춘의 영악함이나 간교함이 작용해 계월의 심경을 불편하게 한 것도 아니요, 남편 보국이 영춘을 목숨처럼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영웅성에 도전한 것으로 인식한 배타성에서 비롯한 잔혹한 처사였다. 천자가 계월에게 보국을 속여 재주를 시험하기로 한 사적 공훈 공간에서는 남편의 수치심이 더하다. 계월은 곽 도사에게 배운 술법으로 큰 바람을 일으켜 보국이 정신이 혼미한 사이 달려들어 보국의 창검을 빼앗고 산멱통을 잡아 천자가 있는 곳으로 온다. 보국은 계월의 손에 끌려오며 살려달라고 외친다. 후에 보국은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는 수치심에 몸을 떤다. 그러나 그녀의 영웅성에 반기를 들지 못하고 속으로 못내 치를 떤다.
 
두 번째, 공적 공훈 공간에서의 배타성에 대해 알아보자. 계월의 남성성에 대한 배타적 행위는 전투를 치르는 공적 공훈 공간에 이르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적장의 머리가 말 아래로 떨어지자 칼끝에 꿰어 들고서 칼춤을 추며 본진으로 돌아온다”든지, “적장 맹길의 두 팔을 내리치고 적졸을 죽이니 피가 흘러 내를 이룬다”거나, 자신을 강물에 던진 도적의 “상투를 잡고 모가지를 동여 배나무에 매어 단 뒤 칼을 들어 점점이 도려 놓고 배를 갈라 간을 꺼내 놓고 하늘에 네 번 절을 했다”라는 공간에서는 잔혹성이 그대로 전달된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을 천하에 공포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이다. 계월의 이러한 배타적 잔혹성27) 안에는 여성성을 강하게 부인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한편, 아무리 뛰어넘으려고 해도 넘을 수 없는 현실적 제약과 억압에 대한 과잉적 대응이 표출된 것이다.
 
이처럼 「홍계월전」은 공훈 공간을 활용해 여성영웅의 내면적 갈등 심리를 표출한다. 이성과 동성을 향한 배타성은 오히려 홍계월의 영웅성을 도모하는 데 효과적인 연출로 작용하였고, 아울러 당대인의 독서층 내면에도 이와 같은 고심이 전달되었을 법하다. 그것이 주체성이든 정체성이든 여성영웅 홍계월은 자신이 타고난 성품을 세상에 써 보고자 맹활약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눈에 띤다. 세상에 ‘나’를 위대하게 활용해 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배타적 잔혹성이 주는 이중성은 그녀의 또 다른 삶의 목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신념이든 신의든 ‘본성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한 것임을 주지해 볼 필요가 있다.
 
 
11) 정병현․이유경, 앞의 책, p.266.
12) 정병헌․이유경, 앞의 책, p.267.
13) 서대석, 『군담소설의 구조와 배경』, 이화여대 출판부, 1985, p.1.
14) 조은희는, 여주인공이 남복을 하는 이유가 첫째 위기 모면이나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이대봉전」, 「양주봉전」, 「이봉빈전」, 「정수정전」 등), 둘째, 남성의 기질을 타고나 입신양명하여 남성의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옥주호연」, 「방한림전」, 「이학사전」 등), 셋째 부모의 의사에 따라서( 「홍계월전」등), 넷째 남편을 돕기 위해서(「위봉월전」, 「장국진전」 등)라고 밝혔다.(조은희, 「홍계월전에 나타난 여성의식」, 『우리말글』 22, 『우리말글』학회, 2001, p.205) 박혜숙 역시 남장을 하는 계기를, 겁탈이나 늑혼의 모면, 다가올 환란 대비, 입신양명 등의 목적성을 바탕으로 「음양옥지환」, 「김희경전」, 「석태룡전」, 「홍계월전」, 「방한림전」 등의 작품을 나누어 본 바 있다.(박혜숙, 「여성영웅소설과 평등 차이 정체성의 문제」, 『민족문학사연구』31,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연구소, 2006, p.165)
15) 류준경은, 여성영웅소설의 특징적인 면모가 남복개착이 잠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남복 개착 화소는 여성영웅을 등장시켜 서사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서 반드시 결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웅소설에서 남복 개착은 늑혼 화소와의 결합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았다.(류준경, 「영웅소설의 장르관습과 여성영웅소설」, 『고소설연구』12, 한국고소설학회, 2001, pp.24-26.)
16) 정준식, 「홍계월전이 구성원리와 미학적 기반:단국대 103장본 계열을 중심으로」, 『한국문학논총』51, 한국문학회, 2009, p.54.
17) 최혜진, 「여성영웅소설의 성립 기반과 규훈 문학」, 『우리말글』34, 『우리말글』학회, 2005, p.262.
18) 물론 이 작품만이 낭만성을 거세해 나가거나 희석시켜 나간 작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본고에서는 이 작품의 낭만성에만 집중하기로 한 만큼 선후대 작품 사이의 대별을 통한 낭만성의 퇴보는 다음 논문을 기약한다.
19) 류준경은, 영웅소설 주인공은 세속적 조력자를 통해 능동적인 인물형으로 변화하고, 신이한 조력자로부터 영웅적 능력을 획득한 뒤에 적극적인 의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고 보았다.(류준경, 「방각본 영웅소설의 문화적 기반과 그 미학적 특질」,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pp.42-46.)
20) 여성영웅들은 자신이 여성적 현실에 머무는 한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한다. 이 경우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근원은 그들의 타고난 능력에 기반한다.(이지하, 「주체와 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영웅소설」, 『국문학연구』16, 국문학연구학회, 2007, p.41.)
21) 조은희는, 계월이 사회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은 결정적 계기는 전쟁에서의 승리 때문이라고 보았다. 영웅의 이야기에서 전쟁의 의미는 매우 큰 의의를 띤다면서, 전쟁의 승패가 영웅의 자질을 테스트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계월이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개인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조은희, 앞의 논문, p.207.)
22) 이 작품은 일단 ‘영웅의 일생’ 구도가 일차적으로 완성된 이후에 다시 남녀주인공 사이의 대립이라는 서사 전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이인경, 앞의 논문, p.231.)
23) 그래서, “여성영웅은 영웅소설의 장르관습 속에서 수용된 것이기에 철저히 남성영웅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홍계월은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아버지가 부여해 준 남성성에 따라 남성영웅적인 삶을 철저히 영위한다”(류준경, 앞의 논문(2001), p.30.)는 주장에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24) 전용문, 「홍계월전의 소설사적 위상」, 『어문집』32, 목원대학교, 1997, p.131.(전용문은 영웅화에 대한 욕구와 의지 경도에 따라 음조여성영웅형, 일시남장형, 남장영웅유형으로 유별하였다. 「장국진전」의 계양은 일시남장영웅형, 「이대봉전」의 애봉은 남장영웅형, 「홍계월전」의 계월과 「여장군전」의 정수정, 「이학사전」의 현경은 남장영웅형을 넘어 남성까지 지배 통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저들보다 발전한 남성지배여성영웅형 성격으로 나누었다.
25) 「홍계월전」의 여주인공이 남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이 서술될 경우에는 ‘평국’이란 이름으로, 홍시랑 부부나 여공, 그리고 보국과 함께 지내는 가정 내에서는 ‘계월’이란 이름으로 지칭되는 곳에서도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갖는 이중성을 살필 수 있다.(이인경, 앞의 논문, p.234.)
26) 김정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본 여성영웅 홍계월」 , 『고소설연구』35, 한국고소설학회, 2013, p.131.
27) 여성영웅들은 국내의 역적뿐만이 아니라 운남과 같은 변방의 소수민족이나 흉노, 교지국, 남만 등 변방의 이민족을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성영웅소설이 애초 중국을 무대로 한 남성영웅소설을 모방한 데서 유래한 한계이기도 하지만, 여성영웅소설에서는 중국이라는 중심의 관점에서 이민족을 오랑캐로 간주하고, 그들을 타자화하며 가차 없이 섬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신이 모방하는 대상에 대한 주체적 비판적 성찰이 결여된 무조건적인 모방의 결과인데, 폭력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홍계월이 적장의 배를 갈라 간을 끄집어내는 장면 등은 남성의 부정적 가치에 대한 성찰의 결여에서 비롯한 것이다.(박혜숙, 앞의 논문, p.175.)
 
 

 
Ⅲ. 여성영웅 공간의 문학적 의미
 
영웅의 사전적 풀이는 ‘재지(才智)와 담력과 무용(武勇)이 특별히 뛰어난 인물’이다. 곧 영웅이란 육체적․정신적으로 평범한 인간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경지의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영웅은 고정된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외부세계로 나아가 개인이나 사회, 나아가 국가적 고난과 역경까지 극복해 내는 능력으로 변신한다. 그럼으로써 자아와 세계와의 일치된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유동적인 존재이다. 이처럼 탁월한 능력의 영웅이 고전소설을 통해 출현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현실적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현실에서 빚어지는 온갖 고난과 갈등을 영웅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투영시켜 헤쳐나감으로써 대리 만족을 구가하였다. 남성영웅의 뒤를 이어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문학적 출현 동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의 여성은 가부장제의 엄격한 통제 아래 사회와 분리된 가치만을 실현할 수 있었다. 여성의 주요한 활동은 가정에만 국한되어 있었고, 남성의 사회적 입신출세의 조력자로서, 가문의 후손을 잇는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로서 존재 의의를 찾았다. 여성 독자들은 현실적으로 가정이나 사회의 억압 속에 있었지만, 문학 작품 속의 여성영웅을 통해 제약되어 있던 욕구를 발산할 수 있었다.28) 한글 보급에 따른 여성 독자층의 확대와 방각본 소설의 대량 유통 등의 요인들이 여성영웅소설의 대중화에 긴밀한 작용을 하였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의 운명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여성 독자의 근대적 사고가 여성영웅의 출현 동인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상당히 유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초탈한 것처럼 이해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여성영웅의 출현을 촉발시킨 근원적인 동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남성의 이상적 지향점이었던 영웅상이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는 장치로 문학 속에서 구가되었다고 해서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의 긍정적 타진’은 당시의 사상적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리려 그와 부합되기 위한 일면의 노력들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영웅은 작품 안에서 유교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본질적인 가치란 다름 아닌 천품(天稟)의 발견과 운용이다.
 
그렇다면 이 본질적인 가치, 천품을 발견하고 운용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고정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을 통해 유교는 그 사상적 본질을 투영시킴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길을 모색한다. 즉, 사회 저변에 관류하고 있던 유교사상이 양란 후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던 중 출현시킨 것이 여성영웅과 그 공간인 셈이다. 입신양명하여 가문의 명망을 세우고 또 사회와 국가의 존립과 안위를 수호하는 것이 삼강오륜의 덕목인 충효이다. 입신출세하면 자연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고, 또한 자신의 경륜을 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고전소설에서 주인공이 장원 급제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 하는 사건의 전개 과정이 그 전형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풍조요 이상이었다.29) 홍계월 같은 여성영웅은 여성의 위치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천품(天稟)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운용하여 유교적 덕목을 성취해 낸 영웅이다.
 
홍계월에게 있어 천품의 발현은 영웅 심리의 표출이다. 세상의 명리에 대해 남성의 조력자로서만 지내던 여성이 공명(功名)의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 그로써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진솔한 욕구가 있음을 알리고, 또 그것을 성취하고자 세상으로 나가 자신을 운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 준다. 홍계월이 남장을 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의 질서 속으로 뛰어든 것은, 인간으로서 타고난 천품을 세상에 발현하고 또 그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 까닭에서이다. <홍계월전>은 전통적 유교 가치의 반성에서 발아된 실리적 세계관이 홍계월을 통해 수용되고 있다.
 
홍계월에게 유리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도, 이적 공간의 낭만성이 표피적으로나마 필요했던 것도, 공훈 공간의 배타적 잔혹성이 절실했던 것도 이러한 실리적 세계관,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의 타고난 천품을 말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단한 노정 공간 안에서 계월은 남복 개착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달았고, 이적 공간의 낭만적 공간 안에서 조력자의 경이로운 음조를 덜어내고자 했으며, 공훈 공간의 배타적 공간에서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인식, 영웅성에 대한 인정을 시험하기 위해 잔혹함을 내세우는 가운데 천품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목도해 본다. 그 결과 홍계월은 일정한 공로를 세운 뒤 가정 공간으로 복귀하는 작품들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여복 위에 조복을 걸치고 조정 일에 관여하는 인물로 남는 위업을 달성한다. 이러한 양성 평등의 공간은 여주인공인 홍계월이 치열하게 바깥세상과 투쟁해 형성한 중요한 배경이다.
 
다시 말하자면 홍계월이 남장의 형태로 사회로 진출하여 영웅적 활약을 펼쳤다고 해서 이 작품이 온전한 유교적 이념으로부터의 탈피를 보여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홍계월은 등과하여 명성을 얻고 가문과 나라의 존립과 안위를 책임지는 전형적인 출장입상(出將入相)의 공간들을 보여 줌으로써 유교적 이념을 고수한 인물이다. 다만 가정에 귀속되어 여성성으로만 국한되어 있던 삶의 가치를, 개성을 가진 한 개체로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가치로 전환시켰다는 데서 여성영웅으로서의 의의를 찾아야 한다. 홍계월 한 인간으로서의 타고난 천품을 실현하는 운용적 측면에서 매우 적극적인 영웅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홍계월의 경우 여성으로서의 삶보다 영웅적 삶을 실현하기 위해 남성 중심의 세계로 뛰어든 인물이다. 이 여성영웅은 애초 여성이 지니지 못했던 본성을 새롭게 쟁취하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요,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의 천품을 발현한다. 여성영웅은 여전히 유교적 영향권 아래 있었으며, 그것이 규범으로 제도화된 현실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안에서 여성영웅은 자신을 혁신하는 대안으로 오히려 유교적 본질의 실천을 꾀했다. 여성영웅소설의 최종 지향점이 유교적 세계관의 탈피나 거세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여성영웅소설은 여성영웅을 통해 천품의 실현이라는 유교의 기저사상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욱 견고한 유교적 세계관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성영웅이 천품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운용한 명분과 실리는 유교사상의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면을 시험해 본 문학적 수용이자 사회적 수용이기도 하다. 비록 제도적 결함을 노출시키고는 있으나, 유교사상의 본질은 여전히 와해되지 않고 세계를 구축하는 중심축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 역할을 사회의 소외 계층이었던 여성을 통해 반증함으로써 유교적 세계의 타당성을 유도한 것이다.
 
 
28) 임성래, 『조선후기의 대중소설』, 보고사, 2008, p.190.
29) 최삼룡, 「고소설의 사상」, 『한국고전소설론』, 새문사, 2002(초판 1990), p.54.
 
 

 
Ⅳ. 결론
 
이 논문의 목적은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의 문학적 양상과 의미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보는 데 있다. 세대를 초월한 강인한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토대, 그녀가 종횡으로 누볐던 ‘공간’의 양상에서 문학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첫째, 유리(遊離)공간의 독립적 구성이라는 양상이다. ‘유소년기’의 고행담으로 구조화된 유리공간이 그것이다. 부모와 유리되는 공간, 즉 강과 갈대밭은 인간의 추악한, 혹은 본능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 이 유리 공간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투영하며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서사를 선사한다. 유리 공간이 여성영웅소설마다 특정한 구조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성인물이 어떻게든 가정 밖으로 자신을 나가야 했고, 당대의 제도권 안에서는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유소년기의 유리 공간을 통해 가정 바깥으로 넘어선 것이다.
 
둘째, 이적 공간의 표면적 낭만성이란 양상이다. 전기소설과 영웅소설의 경우 그 장르의 성격상 ‘낭만적 이적’에 상당 부분 서사적 음조를 받았다. 「홍계월전」역시 이러한 낭만적 이적 공간에 여주인공의 영웅성을 의탁하고는 있으나 상당 부분 현실적 서사로 이끌어 나가고자 한 흔적이 도처에서 돋보인다. 갈대밭 공간과 벽파도, 전장 공간30)은 여주인공 홍계월의 영웅성을 낭만적 이적으로 답보하면서도 현실적 개연성으로 이끄는 공간들이다. 이는 「홍계월전」이 근대적 사실 기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셋째, 공훈 공간의 배타적 잔혹성이란 양상이다. 여성 영웅화의 의지와 성격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바로 공훈 공간이다. 공훈 공간은 여성이 남성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남성에 대한 배타적 징치, 나아가 같은 여성에 대한 혹독한 징벌을 가하기도 하는 배경이다. 자신이 안주하지 못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배타성은 잔혹한 일면으로 나타나는데, 그 공간이 바로 공훈 공간이다.
 
「홍계월전」의 공훈 공간은 성격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적 공훈 공간이다. 주로 남편인 보국과 양친, 천자와 대신 등 주변인물과 얽힌 공간인데, 유독 남편을 향한 배타적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어 주목된다. 두 번째는 계월이 적군을 맞아 싸우는 군담을 다룬 공적 공훈 공간이다. 적군에 대한 지략과 용맹함으로 자신의 영웅성을 과시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심리가 지나쳐 잔혹함마저 주는 것은 계월의 영웅성이 그만큼 당대의 제도와 관습을 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Ⅲ장에서는 여성영웅 공간의 문학적 의미를 탐색해 보았다. 남성의 이상적 지향점이었던 영웅상이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는 장치로 문학 속에서 구가되었다고 해서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의 긍정적 타진’은 당시의 사상적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리려 그와 부합되기 위한 일면의 노력들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영웅은 작품 안에서 유교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본질적인 가치란 다름 아닌 천품(天稟)의 발견과 운용이다.
 
그렇다면 이 본질적인 가치, 천품을 발견하고 운용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고정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던 여성을 통해 유교는 그 사상적 본질을 투영시킴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길을 모색한다. 즉, 사회 저변에 관류하고 있던 유교사상이 양란 후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던 중 출현시킨 것이 여성영웅 공간인 셈이다.31)
 
계월의 영웅 심리는 다름 아닌 한 인간으로서 타고난 존재 가치를 대변한 표상이며, 그 천품을 실리적으로 운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여성영웅소설은 여성영웅을 통해 천품의 실현이라는 유교의 기저사상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욱 견고한 유교적 세계관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성영웅이 천품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운용한 명분과 실리는 유교사상의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면을 시험해 본 문학적 수용이자 사회적 수용이기도 하다. 비록 제도적 결함을 노출시키고는 있으나, 유교사상의 본질은 여전히 와해되지 않고 세계를 구축하는 중심축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 역할을 사회의 소외 계층이었던 여성을 통해 반증함으로써 유교적 세계의 타당성을 유도한 것이다.
 
본 논문은 「홍계월전」한 작품에 유의하여 그 여성영웅 공간을 살피고자한 글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중심으로 한 선후대 작품 사이의 대별을 통한 보다 독창적 공간 특질에 대한 연구는 다음 논문을 후약하기로 한다.
 
 
30) 조은희는, 계월이 사회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은 결정적 계기는 전쟁에서의 승리 때문이라고 보았다. 영웅의 이야기에서 전쟁의 의미는 매우 큰 의의를 띤다면서, 전쟁의 승패가 영웅의 자질을 테스트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계월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개인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조은희, 앞의 논문, p.207.)
31) 여성영웅의 출현은 영웅소설의 장르운동 과정에서 자기 갱신의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경우 여성영웅의 출현은 영웅소설의 매너리즘적 성격 곧 유형성의 탈피와 연관된다. 따라서 여성영웅 등장 요인에 있어 독자층의 변모보다는 오히려 상업적 유행성이 강한 영웅소설의 장르적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류준경, 앞의 논문(2001), p.1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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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spect and literary significance of the heroine’s space in Honggyewoljeon
- Kim, Hyun-Hwa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dd new interpretation to features and literary significance of space for heroines in Honggyewoljeon. Its literary significance was sought for in the situation that enabled a heroine to be born and features of ‘space’ where she bustled around.
 
Chapter Ⅱ of this thesis looked into features of the heroine’s space. Frist feature is structural independence of separated space. Its certain story-telling frame inherent to stories with heroines is a separated space structrualized into an odyssey of her childhood. The river and marsh separating her from her parents reflect its characters’ internal state in connection to ugly or natural greed of humans. This separated space in the beginning of the story is a focal structure that stimulates her heroism or ambition.
 
Second feature is superficial romance of separate space. Fictional biographies and hero/heroin novels have been considerably affected by narrative tone due to the genre’s nature. Honggyewoljeon alos puts its heroine’s heroism in this separated space of romance but its readers find its sporadic effort to unfold story in a realistic narration. marsh, Byukpado(Island) and battle field are the space that features its heroine, Honggyewol’s heroism in a romantic manner but leads them into realistic probability, which is an indirect proof that the novel began paying attention to the realistic writing of the modern time.
 
Third feature is the exclusive atrocity of feats. It’s space of feats that dramatically shows a woman’s will & nature to be a heroine. Space of feats is where males can’t control or suppress females and is also a background where exclusive punishment upon males that is impossible in reality is possible and further, fierce punishment is put upon other females. A heroine’s exclusion of males and females upon whom she fails to rest is shown as an atrocious aspect, and this is space of feats.
 
Honggyewoljeon’s space of feats can be divided into private space of feats and public space of feats. the former space, in which her husband Boguk, parents, kings and their subjects are involved, gains attention due to its exclusive nature shown especially toward her husband. The latter is space where a battle story that Gyewol confronts her enemy is unfolded and that she shows off her heroism with her tactics and audacity. By rousing not only terrible but also brutal sense of fear, she makes others unble to deny that she is the captain in general. Giving others even atrocity caused by this psychology of hers indirectly proves that her heroism hardly overcame the system and customs of her time.
 
Chapter Ⅲ of this thesis explores the literary significance of heroine’s space. One can hardly say that the novel goes beyond the Confucian view of the world just because heroism, which is the ideal destination of males, is used as a gadget arousing females’ latent ability. ‘Positive knocking on females’ social participation’ is not something beyond the then ideological frame but rather, shows efforts of an aspect to meet it. The heroine is depicted as a figure realizing the most essential values of Confucianism in the novel. Essential values here mean discovery and usage of innate virtues.
 
Seen from this perspective, the novel, Honggewoljeon realizes the basic thought of Confucianism; realization of innate virtues through its heroine and moreover, pursues to build the Confucian view of the world more substantially. Causes and profits used by the heroine to realize her innate virtues are also literary & social acceptance resulting from trying the mobile & elastic aspect of the Confucian thought. Though it reveals institutional defects, the essence of the Confucian thought still doesn’t collapse, rather implying it’s the pivot that support the world. By indirectly proving its role through women, who were alienated from the then society.
 
Key Word : classical novel, Honggewoljeon, heroine novel, fictional space, innate virtues, hero
 
 
김현화
소속 : 충남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 초빙교수
전자우편 : kumbori@hanmail.net
 
이 논문은 2015년 6월 30일 투고되어
;2015년 8월 1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15년 8월 10일 게재 확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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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 양상과 문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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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