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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8대 현종 때 거란의 2차 침략으로 피난 가는 현종에게 공주(公州) 절도사였던 김은부(金殷傅)는 다른 호족과 관리의 조롱이나 무시와 다르게 에를 갖춰 극진하게 모시었다. 나중에 김은부 세 딸 모두 현종의 왕후가 되었다고 이미 알아보았다. 김은부 부인은 경원 이씨 집안의 이허겸(李許謙)의 딸로 외척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문종 때 권력을 잡은 외척 이자연(인주 이씨 = 경원 이씨)의 후손들이 예종의 왕후와 인종의 왕후까지 차지하며 전횡을 하고 심지어 반란까지 일으킨 이자겸에 대해 알아봅니다.
▣ 예종, 인종과 이자겸(李資謙)
16대 예종과 이자겸의 장녀가 결혼( 문경 왕후)하여 인종을 낳고, 아들 인종의 왕비가 이자겸의 셋째, 넷째 딸이 되었다. 따라서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의 장인이고 인종의 외조부도 된다. 권력에 눈이 멀어 딸들을...
1. 이자겸의 출생은 미상이며 1126년(인종 4)에 사망했다. 2.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음서(부와 조부의 음덕에 따라 그 자손을 관리로 서용하는 제도)로 관직에 진출했다. 3.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경원백(慶源伯) 이호(李顥)이고, 부인은 해주 최씨(海州崔氏)로 시중(侍中)을 역임한 최사추(崔思諏)의 딸이다. 4. 경원 이씨는 나말여초(羅末麗初) 인주(仁州.현재 인천) 지방의 호족세력으로서, 이허겸(李許謙)의 외손녀가 현종비(원성왕후)로 책봉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5. 그렇지만 귀족 가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는 이자겸(李資謙)의 할아버지인 이자연(李子淵)때 부터였다. 이자연의 세 딸은 모두 문종에게 시집을 갔는데 인예왕후(仁睿王后) · 인경현비(仁敬賢妃) ·인절현비(仁節賢妃)가 그들이다. 그리고 이자겸의 누이 또한 순종비 (장경공주)가 되었다. 6. 이자겸은 예종에게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고, 예종이 죽자 인종을 즉위시키며 3녀와 4녀를 왕비로 들이며 전황을 했다. 7. 이런 전횡을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과 척준경(이자겸과 사돈으로 여진족을 무찌른 장군)을 제거하려는 거사가 일어났으나. 오히려 이들이 난을 일으켜(이자겸의 난) 궁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 뒤 인종을 자기 집에 가두고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독살을 시켜 왕위 선위를 노렸으나 실패했고, 이자겸은 척준경에게 제거되어 영광 유배지에서 죽었다. 너무 과욕을 부렸기 때문이다. 8. 인종의 장릉에서 출토된 참외모양 청자 병(1146년 제작)
▣ 조선시대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보낸 영의정 한명회(韓明澮)
8대 예종이 즉위하기 전에 사망한 한명회 3녀(세자빈,공릉)와 성종 왕비인 4녀(순릉)는 20세도 못 살고 사망하였다.
출처 : 민족문화 대백과, KBS, 구글, 네이버, 고려사,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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