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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궁인창의 독서여행
◈ 의자왕, 스리랑카산 자단나무 바둑판과 코끼리 상아로 바둑알 만들어 일본황실 선물 & 장보고선단, 완도 자생 비단벌레 말안장 교역 주도
다자이후(太宰府) 방문기
2024년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일본 장보고유적 답사단은 후쿠오카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다자이후(太宰府)를 방문했다. 1300년 전에 다자이후에는 규슈(九州)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 동안 일본의 외교 및 무역을 관장했다. 이곳에는 당시의 역사를 알려 주는 많은 사적이 산재해 있다.
다자이후(太宰府) 방문기
 
 
2024년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일본 장보고유적 답사단은 후쿠오카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다자이후(太宰府)를 방문했다. 1300년 전에 다자이후에는 규슈(九州)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 동안 일본의 외교 및 무역을 관장했다. 이곳에는 당시의 역사를 알려 주는 많은 사적이 산재해 있다.
 
역사학자 黃俊杰(Chun-chieh huang) 국립대만대 석좌교수는 문화사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는 인도차이나반도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장보고 선단은 선진 조선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나침반을 사용하여 항해의 정확성을 높였다. 또한, 남방 항로 개척으로 이슬람 상인들이 가져온 서역의 물품을 비롯하여 고급 직물과 비단, 금은 세공품, 서적, 의약품, 금, 은, 수은, 구리, 토산품 등을 상호 교역하고 문화 교류를 촉진했다. 장보고 선단은 당시 다자이후나 지쿠젠국의 관인들인 오노노 수에츠그, 미나미부치노 나가카와, 훈야노 미야타마로 등과 빈번한 교류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교역을 하였다.
 
다자이후(太宰府) 전경(사진;궁인창)
 
장보고 대사는 남방 항로 개척 이후 일본 다자이후(太宰府)와의 공적인 무역 관계를 맺기 위해 문성왕 2년(840)에 이충(李忠)과 양원(楊圓)을 회역사(廻易使)로 파견했다. 닌묘 천황 때인 덴초(天長) 10년(833)부터 가쇼(嘉祥) 3년(850)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續日本後紀》에 의하면 이충은 다자이후(太宰府)에서 무역 활동을 하며 일본 조정의 묵인 아래 무역 활동을 넓혀가며 하카타항에 창고를 설치했다. 창고는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저장하기 위한 중요한 시설로 신속한 거래가 가능해져 상업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
 
당시 하카타 항구는 당(唐), 신라, 일본, 인도차이나반도를 연결하는 남방 항로의 핵심 거점으로 소비와 수요가 함께 형성된 국제적인 무역항의 종착점이며 장보고 선단의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회역사는 신라와의 무역을 확대하고, 동아시아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 태정관은 장보고가 파견한 회역사를 공식적인 외교사절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라의 신하가 외국에 사절을 보내오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례와 합당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며 가져온 물품만 교역하도록 허가했다. 장보고 선단은 월주요에서 생산된 청자를 일본에 교역하며, 청자 제조 기술을 도입해 강진 주변에서 생산했다.
 
그동안 연구자는 일본 나라현에 있는 쇼소인(正倉院), 도다이지(東大寺), 법상종 대본산 고후쿠지(興福寺), 국립나라박물관, 옌라쿠지(延曆寺), 도후쿠지(東福寺), 고서점 등을 방문하여 장보고 선단이 사찰과 교역한 고문서 기록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5년 경주 APEC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본비자바둑판’을 선물했다. 한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바둑을 좋아하는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동양권에서는 바둑판과 바둑알은 최고의 친선 선물로 여겼다. 바둑판은 수천 년을 내려오며 두 나라 간의 오랜 인연과 문화적 연결을 이어가는 의미를 지니며 외교적 친밀감과 존경의 선물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문화 외교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한중 관계의 회복과 발전을 기원하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본비자(本榧子) 바둑판(사진:대통령실)
 
쇼무 텐노(聖武天皇, 701~756)가 생전에 아꼈던 물품을 보관한 정창원(쇼소인, 正倉院) 특별전을 보러 일본 국립나라박물관을 자주 방문했다. 이것은 덴표문화(天平文化)의 진수로 백제 의자왕(599~660)이 일본 황실에 선물로 보낸 자단나무로 만든 진귀한 바둑판이 있다. 바둑판은 남아시아 스리랑카에서 크게 자란 자단나무로 제작되었고, 바둑알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 동아시아 국제 교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로 부각되었다.
 
백제 의자왕이 일본 황실에 선물한 바둑판(사진:동아일보)
 
연구자는 장보고 선단이 일본에 진귀한 물품과 도자기를 교역하면서 황실과 사원, 부유한 귀족층이 선호하는 고급 말안장과 비단벌레 장식품 등을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고문헌과 관련 유물을 조사하고 있다.
 
일본 사학자 하마다 고사쿠(濱田耕策) 교수는 “장보고 대사는 상인 차원이 아닌 신라왕권 외교 전개 목적을 가졌다.”라고 논문에서 주장했다.
 
장보고는 헤이안시대 초기 840년에 지쿠젠의 태수인 훈야노 미야타마로(文室宮田麻呂)와 무역 거래를 하며 일본 조정에 말안장을 진상하였다. 이에 태정관(太政官)은 외국의 진상품을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환 명령을 내렸다.
 
【출전】 《續日本後紀》 朝日新聞本 《卷十承和八年(八四一)二月戊辰【廿七】》 ○戊辰。太政官仰大宰府云。新羅人張寳高。去年十二月進馬鞍等。寳高是爲他臣。敢輙致貢。稽之舊章。不合物宜。宜以禮防閑。早從返却。其隨身物者。任聽民間令得交關。但莫令人民違失沽價。競傾家資。亦加優恤。給程粮。並依承前之例。
 
지쿠젠의 태수 훈야노 미야타마로는 말안장을 장보고 선단에 반환하고 일본의 유명한 특산물인 후토오리(비단)를 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태수는 신라, 당나라 무역과 관련하여 쇼와(承和) 10년(843) 12월 22일에 미야다마로의 從者인 야코 우지오오(陽侯氏雄)가 모반을 기도했다고 고발해 24일에 저택에서 무기가 압수되고 841년 정월에 태수 직에서 해임되었다.
 
미야타마로는 모반 혐의로 이즈국(伊豆国)으로 유배되고, 아들 타다모토(忠基)는 사도(佐渡)국으로, 무신 야스츠네(安恒)는 고치현 도사(土佐)로, 밑에 있는 사람들과 승려가 모두 연좌하여 유배하였다. 고발한 야코 우지오는 특별히 大初位下를 제수받아, 지쿠젠국의 少目으로 임명되었다. 교역 분쟁으로 고발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판결이 내려지고 먼 곳으로 가서 억울하게 죽었는데, 나중에 무고로 밝혀져 역사적 평가가 달라졌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은 貞観 5年(863)에 교토 니조성 앞에 있는 신센엔(神泉苑)에서 열린 원혼을 달래는 제사 고레이카이(御靈會)에 미야타마로 태수를 제신 오주(五柱)의 한 축으로 모셔 영혼을 위무했다. 御靈會는 헤이안 시대에 행해진 역병이나 재액을 가져온다고 생각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진정시키기 위한 축제로 훗날 교토 기온마쓰리를 비롯하여 일본의 2,400개나 되는 마쓰리 제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續日本後紀》에는 승려들이 말을 타고 안장과 관련하여 대화한 내용이 적혀있다. 최근 일본 고고학계에서 출토된 마구를 통해 볼 때 장보고 선단이 새로운 교역 품목으로 말 안장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일본에는 본래 말(馬)이 없었고 백제 근초고왕이 아직기를 통해 암수 두 마리를 보낸 것이 처음이다. 당시 신라의 말 안장은 단순한 실용적 도구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공예품이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말안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어 1994년 황남대총 보고서를 작성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이은석 소장에게 말안장에 대해 문의했다.
 
이 소장은 “신라 시대에 유행했던 비단벌레 말안장 장식은 전승이 끊겨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고 일본에 당나라의 말안장이 공급되었다.”라고 말했다. 당나라의 말안장은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며 금, 은, 황동으로 장식하고 작은 방울 마령(馬鈴)을 달아 말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는 효과를 나게 했다.
 
비단벌레 말안장 뒷거리개 장식(사진:국가유산청)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2024년 발간한 《황남대총 남분》에는 “1975년 경주 황남대총남분 부곽에서 발견된 비단벌레(玉蟲, 緋緞) 말안장 뒷거리개 장식은 60개의 용 문양과 2,000개의 비단벌레 날개로 꾸며져 있어 당시의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36년간의 작업을 통해 2011년 처음 공개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라고 기술했다.
 
문화재 전문가는 〈황남대총 비단벌레 말안장 장식과 금동 발걸이〉 유물의 제작연대를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이라고 추정했다. 이 유물은 1600여 년 전 한반도에 자생하던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비단벌레의 날개는 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건조한 상태가 지속이 되면 색깔이 완전히 변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공개한다.
 
경주박물관 발굴팀은 뒷거리개 장식유물을 발견한 이후 보존처리기술이 없어 수장고에서 빛을 차단한 채 유물을 관리하다 2017년 보존처리기술 연구를 시작해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발굴조사의 기록을 2024년 보고서에 담았다.
 
김태식은 2003년 9월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민속소식》에 특별기고 <불사(不死)의 염원, 옥충(玉蟲)>에서 비단벌레(Chrysochroa coreana Han and Park)는 죽어도 껍질이 바스러지지 않는 독특한 특성과 화려한 광채로 인해 의복, 마구류 등을 장식하는 치레거리로 사용되었다고 발표했다.
 
비단벌레(사진:국립생물자원관, 2012)
 
문화재청은 2008년 10월 8일 완도 등 전남 일부 지역에 있는 ‘비단벌레’를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비단벌레는 멸종위기종으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따른 법률」에 따라 허가 없이 채집하거나 사육할 수 없게 되었다. 정은영 등 여러 생태학자들이 2019년에 처음으로 비단벌레(구슬벌레, Jewel beetle, 타마무시) 서식지인 완도 당인리와 해남 대흥사 팽나무 고사목을 조사하여 《한국환경생태학회 논문집》에 〈천연기념물 비단벌레 서식 조사 현황(전남지역)〉 논문을 발표하였다. 비단벌레는 17세기에 소빙기(小氷期) 때 온돌문화가 넓게 지방까지 확산하면서 전라도, 경상도 남부의 고목이 사라져 개체가 완전히 줄어들었다.
 
경주 황남동 120-2호 금동관 비단벌레 장식(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2025년 5월 경주 황남동 120-2호 금동관에서 비단벌레 날개 장식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금동관은 출(出)자 모양 세움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 관테로 구성됐다. 거꾸로 된 하트모양의 구멍을 뚫어 장식했는데, 이 구멍 뒤쪽에 비단벌레 날개 15장이 붙어 있다. 김태식은 “비단벌레는 도교 사상 연관되며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불사(不死)를 향한 신라인들의 깊은 염원이 서려 있다.”라고 말한다.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 재현품(사진:국가유산청)
 
2020년 12월 경주 황오동 족샘 유적지구의 44호 고분에서 발견된 ‘대나무 말다래 판자’는 안장 아래 늘어뜨리는 헝겊 쪼가리로 말이 달릴 때 튀기는 진흙을 막는 용도로 비단벌레 600개를 이용해 만든 꽃이 장식되어 있다. 44호 고분 봉분 지름이 30.8×23.1m로 크기가 신라 봉분 중 33번째인 무덤의 주인공은 10세 안팎의 신라 공주로 추정되며, 바둑돌이 발견되어 바둑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5세기 장신구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일본 후나바루(船原) 고분 마구(사진:연합뉴스)
 
일본 고가(古賀)시 교육위원회는 2020년 11월 공식 기자회견에서 “2013년 후쿠오카현 고가시 후나바루(船原) 고분 土坑을 발굴했다. 비단벌레 무늬가 있는 6~7세기 마구를 처음 발견했는데, 하카타 지역에서 중요한 국제외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고가 시교육위원회는 2024년 8월 27일 경주박물관 말다래를 초청해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옥충주자(玉蟲廚子) 재현품(사진:法隆寺)
 
2015년 7월 14일 아내와 함께 일본 聖德宗 호류지(法隆寺) 대장전 특별실에서 일본 국보인 백제의 미소 백제관음상을 구경했다. 호류지 대보장원(大寶藏院, 백제관음당)에는 비단벌레 20,000마리로 만든 불감(佛龕)이 있다. 옥충주자(玉蟲廚子, たまむしずし)로 불리는 국보는 법륭사 금당에서 불경과 경전을 보관할 때 사용했다. 불감 외부에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표현해 호랑이에게 몸을 공양하는 장면과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보시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호류지(法隆寺) 금당(사진;궁인창)
 
옥충주자 높이는 226.6cm, 폭 136.7, 깊이 119.1cm로 편백나무와 녹나무로 만들어 흑칠(黑漆)로 채색(彩色)했다. 금속 장식은 2,563마리의 비단벌레 날개를 붙여 비취색을 냈다. 옥충주자는 7세기 아스카(飛鳥)시대의 백제 장인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유물로 대보장원(大寶藏院)이 굳게 닫혀 있어 볼 수 없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法隆寺》 책을 구입해 사진으로 확인했다. 신라의 비단벌레는 고대 역사를 품은 신비한 곤충이다.
 
세계문화유산 호류지(法隆寺)(사진;궁인창)
 
호류지(法隆寺) 몽전(夢殿)은 헤이안 시대 739년에 세워졌다. 현재 쇼토쿠(574~622) 태자의 넋을 기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태자가 정자에서 명상하다 부처를 만났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몽전에는 원래 녹나무로 만든 祕佛 구세관음상(높이 178.8cm)이 안치되어 있었다. 불상은 메이지 시대까지도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어네스트 페놀로사(Ernest F. Fenollosa, 1853~1908)와 일본인 평론가 오카쿠라 덴신(1863~1913)이 메이지 정부와 천황의 권한을 위임받아 1884년 각 절의 유물을 조사하다 사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상의 봉인을 풀었다. 祕佛 불상은 매년 봄(4.11~5.5)과 가을(10.22~11.3)에 특별히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일본 호류지(法隆寺) 夢殿 구세관음상(사진;나무위키)
 
2020년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3세트 860점의 바둑돌은 기존에 남성 유물로 여겨지던 바둑돌이 10대 여성 왕족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신라의 바둑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2022년 4월 28일 김수영(女) 아마 7단과 홍슬기(男) 아마 6단이 경주 황오동 족샘 44호 고분 발굴 현장에서 신라 바둑대국 千年手談을 개최하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신라 千年手談(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일본에 있는 백제 바둑판과 신비로운 신라 비단벌레 교역품을 보면서 장보고 선단이 일본 다자이후(太宰府)를 통해 황실, 사원, 상류층, 무장, 일반 서민이 필요로 하는 어떤 물품을 상인과 교역했는지 궁금해 조사했다. 그리고 2025년 경주 APEC에 국빈으로 내한한 중국 시진핑 주석이 비자나무 바둑판에 어떤 수를 구상하고 전개해 나갈지 첫수가 보고 싶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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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11:56)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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