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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21강 강의자료 요약(2026.4.30.)
2026년 4월 30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자야오가(추가) 2. 작자: 이백(李白, 701~762)
* 작자에 대한 설명은 지난 418강 참조하세요
* 이 시에 대한 김교수님의 해설용 슬라이드 8매가 있으나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 一飯千金 일반천금(一飯千金)은 '한 끼의 식사에 천 금 같은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은혜라도 잊지 않고 나중에 크게 갚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회음후열전〉에 등장하는 초한지의 영웅, 한신(韓信)의 일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 한신의 고달팠던 젊은 시절 한신은 젊은 시절 집안이 가난하고 행실도 변변치 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던 그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여기저기서 밥을 빌려 먹으며 연명했습니다.
2. 빨래터 노파와의 만남 어느 날, 한신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근처에서 강물에 빨래를 하던 한 노파(표모, 漂母)가 며칠째 굶어 수척해진 한신의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겨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노파는 빨래 일을 하러 나올 때마다 수십 일 동안 정성껏 한신에게 밥을 먹여주었습니다. 이에 감격한 한신이 다짐하며 말했습니다. "어르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중에 반드시 크게 갚겠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화를 내며 꾸짖었습니다. "대장부가 스스로를 먹여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밥을 준 것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겠느냐!"
3. 천 금으로 갚은 은혜 세월이 흘러 한신은 유방을 도와 초나라 항우를 격파하고 일등 공신이 되어 초왕(楚王)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금의환향한 그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았습니다. 한신은 노파를 직접 만나 감사를 표하며, 약속대로 천 금(千金)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바로 '일반천금'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장작림(張作霖)과 그의 생명의 은인이자 양어머니와 같았던 손부인 마적단 출신에서 만주의 통치자까지 올라간 장작림이 평생 머리를 숙였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죠. 그들의 인연에 대해 소개해 드립니다.
1. 장작림의 비참했던 어린 시절 장작림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도박꾼이었던 아버지가 일찍 죽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마초(말 먹이)를 팔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매우 고달픈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2. 귀인, 손부인과의 만남 배고픔에 지쳐 떠돌던 장작림은 요녕성의 어느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굶주림에 못 이겨 남의 집 밭에서 곡식을 훔쳐 먹으려다 주인에게 붙잡혀 죽도록 얻어맞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그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손부인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고 있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닌 장작림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껴 주인을 말리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3. "내 아들처럼 살아라" 손부인은 장작림을 단순히 한 끼 먹여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 보살핌: 친아들처럼 여기며 정성껏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 가르침: 장작림에게 올바르게 살 것을 당부하며 정서적으로도 큰 지지를 보냈습니다. • 양자 인연: 장작림은 그녀의 은혜에 감동하여 손부인을 수모(養母, 양어머니)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손부인의 보살핌은 거친 세상에서 홀로 자란 장작림에게 유일한 정(情)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4. 만주의 지배자가 되어 돌아온 장작림 훗날 장작림은 군인이 되고 세력을 키워 만주 전체를 호령하는 '만주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도 그는 손부인을 잊지 않았습니다. • 지극한 효심: 장작림은 손부인을 정중히 모셔와 극진히 봉양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높은 관직에 있어도 그녀 앞에서는 항상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 가문 대우: 장작림의 자녀들(장학량 등)에게도 손부인을 친할머니처럼 모시도록 엄격히 교육했습니다.
이야기의 의미 이 일화는 장작림이라는 인물이 비록 마적 출신의 거친 군벌이었지만, '한 번 입은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는 의리를 중시했음을 보여줍니다. (학술적 규명 안됨)
* 장제스(장개석) 총통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평생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던 어린 시절 그를 길러준 고모 장부인(본명 장채봉)과의 이야기는 중국 근대사에서 장제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1. 어린 시절의 든든한 버팀목 장제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세가 기울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왕채옥 여사가 홀로 아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할 때, 장제스의 고모인 장채봉이 조카인 장제스를 유독 아끼며 보살폈습니다. 고모는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마다 장제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그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장제스에게 고모는 어머니처럼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였습니다.
2. "고모님은 나의 또 다른 어머니" 장제스가 북벌에 성공하고 난징 국민정부의 수반이 된 후에도 고모에 대한 효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 정중한 예우: 장제스는 고모를 난징으로 모셔와 최고 귀빈으로 대접했습니다. 그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바쁜 와중에도 고모의 안부를 묻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 송메이링과의 관계: 장제스는 부인인 송메이링에게도 "나의 어린 시절 고모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고모를 시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실 것을 당부했습니다. 실제로 송메이링 역시 남편을 따라 고모를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3. 장제스의 간절한 부탁 1949년 말, 대륙 본토가 공산화되자 장제스는 급히 대만으로 피난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고향인 저장성 봉화(奉化)에 머물고 있던 고모 장부인을 미처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대만에 정착한 장제스는 평생 어머니처럼 의지했던 고모가 공산당 치하에서 고초를 겪거나, 자신의 정적이라는 이유로 해를 입을까 봐 몹시 걱정했습니다. 결국 그는 홍콩의 중간 인선을 통해 당시 정무원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에게 고모를 보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4. 저우언라이의 파격적인 응답 저우언라이는 비록 정치적·군사적 적수였지만, 장제스가 효심과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요청을 단순한 가족 상봉이 아닌, 대만과의 관계를 위한 인도적 제스처로 활용하기로 결심합니다. • 친필 편지: 저우언라이는 장제스의 고향 집과 조상 묘소가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음을 알리며 안심시켰습니다. • 직접 배웅: 저우언라이는 장부인이 대만으로 떠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심지어 장부인이 남경(난징)을 거쳐 홍콩으로 갈 때, 공산당 간부들을 보내 극진히 호위하게 했습니다.
5. 남경에서 홍콩을 거쳐 대만으로 장부인은 저우언라이의 배려 덕분에 남경에서 안전하게 비행기와 배를 이용해 홍콩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90세가 넘는 고령이었던 장부인은 홍콩에서 장제스가 보낸 사람들을 만났고, 마침내 대만으로 건너가 조카와 재회하게 됩니다. 장제스는 대만 공항에서 직접 고모를 맞이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총통 관저 근처에서 정성껏 모셨습니다.
6. 고모의 죽음과 장제스의 슬픔 고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국가 원수였던 장제스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상주의 역할을 자처할 정도로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는 고모의 장례를 친어머니의 장례에 준하는 수준으로 정성스럽게 치렀으며, 생전 고모가 좋아하던 것들을 함께 묻어주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9강(2024,09,05) 강의 교안
*《史記》〈周本紀〉4-023 1. 來 - 甲骨文, 원래는 보리(小麥) 《說文解字》「來,周所受瑞麥來麰。一來二缝,象芒朿之形」
14) 위로, 권면, 《漢書》〈王莽傳中〉「力來農事,以豊年穀」 “농사에 힘쓰게 권면하여 곡식을 풍성하게 한다.”
15) 賚(뇌)와 통함, 주다, 賜予, 《詩經》〈大東〉「東人之子,職勞不來」 제나라와 노나라의 자제들은 오로지 수고롭기만 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직(職) ~ 오로지, 단지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0강(2024,09,12)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1. 子謂公冶長,“可妻也。雖在縲紲之中,非其罪也。” 以其子妻之。
* 《史記》〈周本紀〉4-023 1. 賀 - 금문, 쟁기, 입, 조개 원래는 예물을 보내 축하드림(send a present with congratulation)
《說文解字》「以禮相奉慶也。從貝加聲」 .
1) 고대 方術家들이 주석(錫)을 賀로 일컬음,
2) 성씨
3) 증가하다, 馬王堆漢墓帛書甲本 《老子·德經》「美言可以市,尊行可以賀人」 賀,今《老子》作加。
楊樹達, 《積微居小學金石論叢》〈釋贈〉「凡與贈同義之字皆有增益之義矣」
4) 칭찬하다, 동조하다,
* 《史記》 〈淮陰侯列傳〉 匹夫之勇과 婦人之仁 韓信이 劉邦에게 항우의 치명적인 약점을 분석해 주고 승리 전략을 제시하는 漢中對策
信拜禮畢,上坐。 한신이 절을 하고 예의를 다한 후 유방을 상석에 앉게 했다.
王曰.丞相數言將軍,將軍何以教寡人計策? 유방이 말하기를 승상(蕭何)이 장군에 대해 여러 번 말하였는데, 장군은 무엇으로써 과인에게 계책을 가르치려고 합니까?
謝,因問王曰..今東鄕爭權天下,豈非項王邪?(鄕=向) 한신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로인하여 한왕(유방)에게 묻기를. 지금 동쪽으로 향하여 천하의 권력을 다투려 하시는데, 어찌 항왕(항우)이 아니십니까?
漢王曰..然。 한왕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曰..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 한신이 말하기를..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용맹함과 사나움, 어질고 강함에 있어 상대방과 비교하여 어떻습니까? (孰與=與~比)
漢王默然良久,曰..不如也。 한왕이 한참 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하기를..비교할 수 없어요.
信再拜賀曰..惟信亦爲大王不如也。(拜賀=恭敬, 稱讚) 한신이 다시 공경의 말을 하기를. 저 한신도 또한 대왕께서는 항왕보다 못 하십니다.
然臣嘗事之,請言項王之爲人也。項王喑噁叱咤,千人皆廢,然不能任屬賢將,此特匹夫之勇耳。(喑噁叱咤(음오질타)=號令 ; 廢=倒 ; 任屬=相信付託) 그러나 제가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는데, 청컨대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호령하고 위세를 떨치면 천 명이 모두 엎드리지만, 그러나 현능한 장수에게 믿고 맡기지 못하니 이는 그저 필부의 용기(匹夫之勇)일 뿐입니다.
項王見人,恭敬慈愛,言語嘔嘔,人有疾病,涕泣分食飮;至使人有功當封爵者,印刓敝,忍不能予。此所謂婦人之仁也。(嘔嘔=溫和 ; 至使=致使 ; 刓敝=摸摸) 항왕은 사람을 대할 때 공경하고 자애로우며 말투가 부드럽고, 누군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공을 세운 사람에게 마땅히 작위를 주어야 할 때가 되면, 인장(印)을 만지작거리며 차마 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낙네의 인정(婦人之仁)입니다.
項王雖霸天下而臣諸侯,不居關中而都彭城。有背義帝之約而以親愛王,諸侯不平。諸侯之見項王遷逐義帝,置江南,亦皆歸逐其主而自王善地。項王所過,無不殘滅者,天下多怨,百姓不親附,特劫於威,彊耳。名雖爲霸,實失天下心。故曰其彊易弱。 항왕이 비록 천하를 제패하여 제후들을 신하로 부리지만, 관중에 머물지 않고 팽성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또한 의제(義帝)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신이 친한 이들만 왕으로 삼으니, 제후들이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제후들은 항왕이 의제를 내쫓고 강남에 안치한 것을 보고는, 또한 모두 자신의 주군을 쫓아내고 좋은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항왕의 군대가 지나가는 곳마다 파괴되고 멸망하지 않는 곳이 없어, 천하에 원망이 많고 백성들도 마음으로 따르지 않으며, 그저 그의 위세와 강압에 눌려 있을 뿐입니다. 명분은 비록 패왕(覇王)이나 실상은 천하의 민심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강함은 쉽게 약해질 것입니다.
今大王誠能反其道..任天下武勇,何所不誅!以天下城邑封功臣,何所不服!以義兵從思東歸之士,何所不散! 이제 대왕께서 진실로 그 도리와 반대로 행한다면..천하의 용맹한 자들을 임용하면 누구인들 베지 못하겠습니까! 천하의 성읍을 공신들에게 책봉해 주면 누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정의의 군대를 이끌고 고향(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따른다면 어떤 적인들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且三秦王爲秦將,將秦子弟數歲矣,所殺亡不可勝計,又欺其衆降諸侯。至新安,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唯獨邯、欣、翳得脱,秦父兄怨此三人,痛入骨髓。今楚彊以威王此三人,秦民莫愛也。(阬=坑) 또한 삼진(三秦-雍王 章邯 ; 塞王 司馬欣 ; 翟王 董翳)의 왕들은 진나라의 장수들로서, 진나라 자제들을 이끌고 수년간 전쟁을 치러서, 죽거나 다친 자가 셀 수 없이 많으며, 또 자기 부하들을 속이고 제후들에게 항복했습니다. 신안(新安)에 이르러 항왕이 거짓으로 진나라 투항병 20여만 명을 끌어들여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을 때, 오직 장한, 사마흔, 동예 세 사람만 살아남았는데, 진나라의 부모 형제들은 이 세 사람을 원망하여 그 고통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지금 초나라가 무력과 권위로 이 세 사람을 왕으로 세웠으나, 진나라 백성은 이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大王之入武關,秋豪無所害,除秦苛法,與秦民約,法三章耳。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於諸侯之約,大王當王關中,關中民咸知之。大王失職入漢中,秦民無不恨者。 대왕께서 무관으로 들어와서는 털끝만큼도 해를 끼치지 않았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백성들과 3장법을 약속하셨습니다. 진나라 백성 중 대왕께서 진나라의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제후들 간의 약속대로라면 대왕께서는 마땅히 관중의 왕이 되셔야 하며, 관중 백성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직분을 잃고 한중으로 들어오시게 되자 진나라 백성들이 한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今大王擧而東,三秦可傳檄而定也。於是漢王大喜,自以爲得信晚。遂聽信計,部署諸將所擊(傳檄 ; 部署=安排) 이제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나아가신다면, 삼진 땅은 격문만 전달해도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한왕은 매우 기뻐하며 스스로 한신을 늦게 얻었다고 여겼다. 마침내 한신의 계책을 따르고, 여러 장수에게 공격할 곳을 나누어 맡겼다.
* 이 열전에 김교수님의 해설용 슬라이드 15매가 있으나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 耳 = 而耳 = 爾 = 羅了 ~~ 일 뿐이다 * 反其道 = 反面敎師 * 不可勝計 ~ 셀 수 없이 많다.
* 약법 삼장 1. 殺人者死, 2. 傷人及盜抵罪. 3. 餘悉除去秦法
* 필부필녀(匹夫匹婦) ~ 1) 주(周) 나라시절에 결혼 짝 또는 배필이라는 의로 사용 되었습니다. 2) 일반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은 훗날 중국 근대사에서 양계초(량치차오) 등에 의해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표어로 정착되어, 국난의 시기마다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슬로건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宗羲), 왕후지(王夫之) 이 세 명은 흔히 '명말청초(明末淸初)의 3대 유학자' 또는 '명말청초의 3대 사상가'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던 격동기에 활동하며, 당시 주류였던 성리학의 관념적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이후 청나라 학술의 중심이 되는 고증학(考證學)과 실천을 중시하는 경세치용(經世致用) 사상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각 인물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황종희: 전제 군주제를 비판하고 민본주의적 정치 사상을 담은 《명夷待訪錄(명이대방록)》을 저술했습니다. • 고염무: 실증적인 연구 방법을 강조하며 고증학의 기틀을 마련했고, 《일지록(日知錄)》 등을 통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학문을 주장했습니다. • 왕후지: 독창적인 기론(氣論) 중심의 철학을 완성했으며,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역사관을 제시했습니다.
* 선남선녀(善男善女) 1. 일상적인 의미: "잘 어울리는 예쁜 커플" 2. 불교적인 의미: "착한 사람들과 불교도" 원래 이 용어는 불교 경전에서 유래했습니다. 한자 뜻을 그대로 풀면 '착한 남녀'라는 의미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남성(우바새)과 여성(우바이)'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 張三李四 1) 어떤 사람이다. 2) 항조우 설화 중국 항저우(항주) 설화와 관련된 '장삼이사왕오조륙(張三李四王五趙六)'은 단순히 흔한 성씨를 나열한 것을 넘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아주 흔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더욱 강조해서 부르는 표현입니다. 그 구체적인 배경과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항저우 설화 속의 유래 이 표현은 송나라 시대 항저우의 번화했던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시 항저우는 인구가 굉장히 많고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였습니다. •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길거리에서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일일이 알기 어려웠습니다. • 그래서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장(張), 이(李), 왕(王), 조(趙)씨 뒤에 숫자를 붙여 '장씨네 셋째, 이씨네 넷째, 왕씨네 다섯째, 조씨네 여섯째'라고 대충 부르던 관습이 생겼습니다. • 이것이 굳어져서 "누구인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이름 없는 수많은 행인"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2. 숫자가 의미하는 것 여기서 3, 4, 5, 6이라는 숫자는 실제 태어난 순서보다 '나열'의 의미가 강합니다. • 장삼(張三) & 이사(李四): 가장 대표적인 두 명을 지칭하며 사자성어로 굳어졌습니다. • 왕오(王五) & 조륙(趙六): 뒤에 덧붙여져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다"라는 확장된 의미를 전달합니다.
3. 문화적 의미: '백성'의 상징 이 표현은 동양 철학이나 문학(특히 불교의 선종 어록 등)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장삼이사왕오조륙이 모두 불성이 있다." 위와 같은 문장에서 쓰일 때, 이는 "지위가 높거나 특별한 지식이 있는 사람만 아니라, 시장 바닥의 평범한 사람들 모두"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2026.4.30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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